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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역시 시어미

정남숙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5월 29일 14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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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요!” 어제, 서울 작은아들 집에서 주문하고 전주 집으로 내려오니, 나와 비슷하게 도착했다. 달랑 책 한 권을 작은며느리를 통해 인터넷으로 구입, 집으로 배달하게 한 것이다. 원하던 책을 받아든 순간, 반가움보다 괜히 시어미 심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민망하기 그지없다. 설 연휴 역귀성 했다. 며느리가 음식을 차리는 동안 나는 미국 유학을 떠난 손자의 빈방에 짐을 풀고, 책장을 마주하고 있었다. 앗! 이건, 내 손에는 이미 ‘순우리말 동화집’이 들려있었다. 당장 책을 펼치고 앉았다. 그러나 책을 펴서 머리말과 일러두기를 읽는데, 갑자기 두통이 심해 글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설 다음 날 작은아들 집으로 올 때, 첫날부터 내 머리맡을 지켰던 동화집을 챙겼다. 손자는 여름방학에나 귀국할 것이니 아무 걱정 없이 넣어 가지고 온 것이다.

저녁에 전화벨이 울린다. 큰 며느리다. 고등학교 교사로 다문화 상담을 맡은 큰며느리는, 조심스레 “어머니 혹시 동화집?”하고 묻는다. 내 취향을 알고 있으니 내가 가져온 것을 알고 묻는 것이다. 필요한 책이란다. 내일 택배로 보내기로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동계 올림픽경기를 시청하고 있었으나 내 심사는 이미 꼬여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안부를 전할 줄 알았는데, 동화책 얘기만 하고 전화를 끊으니, 허락받지 않고 가져온 미안함은 잠깐 서운함만 점점 커갔다.

큰 며느리와 만남은 20년 차다. 첫인상은, 분별없이 나대는 나와 격이 다른 귀티가 풍기는 야무진 아이였다. 딸이 없는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이름을 부르며 친딸같이 대하기로 했다. 고부간의 갈등을 없애려고 일찌감치 내 민낯과 허물도 그대로 내보이고 있다. 속 깊은 며느리는 내색하지 않고 우리 내외를 비롯하여 시댁 일가친척들의 대소사까지 살뜰히 챙기고 있다. 집안 어른들의 칭찬을 온몸에 받고 있어 내 자존심을 지켜주며 자식 자랑을 입에 달고 살 수 있게 한 장 본인이다. 철 따라 집안 모든 일은 물론, 내 건강을 위한 각종 보약과 건강식을 골고루 살펴 주는 살뜰한 며느리다.

부부싸움도 사소한 일로 시작된다고 하듯, 지금까지 무슨 말이 든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약간 서운해도 금새 잊어버리는 쿨한 시어미로 자처한 나다. 격의 없이 통하는 사이라 피차간 믿었기에, 큰며느리도 제 필요를 당연히 요구한 것뿐인데,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내 심사가 꼬이니, 사흘 굶은 시어미 상이 나온 것이다. 나도 모르게 며느리 흉을 찾고 있다. 케케묵은 옛일을 되새겨보고, 찾아봤자 별것 아닌 일들을 침소봉대하며 밤잠을 설쳤다. 내가 필요하면 사면 될 것을 왜 망신을 당했나? 오기가 발동하여 작은며느리에게 인터넷구매를 요청한 것이다. 택배를 받아든 순간, 나의 옹졸함이 확 몰려온다. 성현들의 지혜와 슬기가 담겨있는 전래동화를 좋아한다면서, 그 내용이 담긴 책 한 권 때문에, 며느리의 허물을 찾고 있다니, 나 스스로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도 ‘역시 시어미’ 인가보다.



정남숙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등단

수필집: ‘노을을 닮고 싶다’ ‘난 아직도 꿈을 꾼다', ‘역사의 마당에서 전통이랑 놀아보자’

'대한문학 작가상’, ‘올해의 수필인 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선정, ‘올해의 수필인 상’ 수상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 행촌수필, 은빛수필 회원.

국립전주박물관, 전주기독교역사기념관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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