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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야민정음(野民正音) 단상

재기발랄한 문자유희를 통해 부담스러운 친구 만들기보다 편한 이웃 같은 소통에서 상호 존중의 문화를 꿈꾼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2년 01월 27일 12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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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은(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요즘 들어 부쩍 사전을 검색하는 일이 많아졌다. 인터넷 뉴스나 블로그 기사를 읽다 보면 모르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실로 경이로운 수준의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디지털 기반 시장이 성장하고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OTT(Over The Top, 온라인동영상서비스), 메타버스(metaverse), 다크 이코노미(dark economy),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토큰) 같은 말들이 인터넷 지면에 넘실거린다. 그러다 보니 최신기사 한 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번씩 인터넷 사전을 검색해야 하는 형편이다. 급속히 발전하는 물질문화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사회부적응자가 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런 소외감을 주는 인터넷 뉴스와 점차 멀어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상에서 어떤 단어의 글자를 비슷한 모양의 다른 글자로 바꿔 쓰는 ‘야민정음’은 그런 최첨단 신조어와는 결이 다른 느낌이다. 야민정음은 인터넷이라는 매체 환경을 기반으로 모방과 복제, 진화되면서 널리 유행하는 인터넷 밈(Meme) 문화로, 신세대들이 개성을 표출하는 놀이문화의 하나이다. 누구나 단박에 그 뜻을 알 수 있는 뻔한 말 대신 신세대만의 은밀한 용어로 즐기는 야민정음에서는 낱말이 주는 재기발랄함이 풍긴다. 한 인터넷커뮤니티의 ‘야구갤러리’와 ‘훈민정음’을 합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띵작’이라는 말 앞에서 비문해자로 전락하는 아찔한 경험을 한 뒤 야민정음을 알게 되었다. 한글 자모를 자유자재로 해체하고 짜깁는 능력이 탄성을 자아내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그 놀이에 함께 끼어서 즐길 만큼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이웃 정도지, 놀자고 찾아가는 친구는 아니랄까.

야민정음은 자모를 비슷한 모양으로 바꾸는 것부터 회전시키거나 압축하는 것, 로마자나 한자를 사용하는 것까지 그 용법이 매우 다양하다. ‘띵작(명작)’, ‘댕댕이(멍멍이)’, ‘네넴띤(비빔면)’, ‘커여움(귀여움)’은 비슷한 형태를 이용한 말이고, ‘롬곡옾눞’은 ‘폭풍눈물’을 180도 회전한 말, ‘쀼(부부), ‘뚊(돌돔)’은 압축한 말이다. 또 한자 큰 ‘대(大)’자를 자음 ‘ㅊ’, 사람 ‘인(人)’자를 ‘ㅅ’으로 쓰거나 ‘성 김(金)’자를 한글 ‘숲’, ‘辛라면’을 ‘푸라면’으로 바꿈으로써 컴퓨터나 휴대폰에서 보다 쉽고 빠르게 쓸 수 있다.

이렇게 변형 표기를 알고 나면 왜 이렇게 쓰는지 이해가 되지만, 처음에 ‘띵작’을 접했을 때는 인터넷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뜻을 알기 어려웠다. 글자를 의미를 담은 활자로 보고 기표와 기의의 1대1 대응에 익숙한 사람에게, 글자를 이미지로 보고 도상적으로 활용하는 젊은 세대들의 야민정음은 가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야민정음은 한글이 가진 다양한 문화적 가능성을 확대한다는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한국어문법을 파괴·훼손하고 인터넷 신조어를 모르는 다수와의 소통을 단절시킨다고 지적받는다. 또 기존 은어들의 문제점이었던 은폐성이 문제시되기도 하지만 온라인 기반에서 특정 세대의 연대와 소통에 효과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새로움은 기존의 관점을 고수하거나 정해진 방법론만 추구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에서 요구되는 소통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야민정음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세대가 문자를 매개로 새로움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방식의 놀이문화이다. 인터넷시대의 이 재기발랄한 문자유희를 전통시대의 놀이문화와 견주어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 세대마다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누구에게나 질풍노도, 완세불공의 시기가 있었고,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렇게 새로움은 익숙함이 되고 묵은 것이 된다.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흐름인 것이다. 상대를 부정하고 자기를 강요하며 억지스러운 친구가 되기보다는 만나면 웃음 띤 얼굴로 가볍게 인사 나누는 이웃 같은 소통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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