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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정복군주 광개토대왕

김정길

기사 작성:  이종근
- 2021년 12월 02일 12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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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제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재위 22년 동안 광활한 영토를 확장한 정복군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잦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풍족한 백성들의 삶을 위해 노심초사했던 애민군주로 백성에게 사랑을 받았다. 뛰어난 용병술로 북방의 연나라 침략과 남쪽의 백제와의 전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고구려를 부국강성의 나라로 만들고 영토 확장에 성공한 군주였다. 그의 아들인 장수왕은 아버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토의 북쪽 국내성에 광개토대왕비(414년)를 건립하였고, 남쪽 백제와의 경계인 충주에 고구려비를 세웠다.

17세 때 고구려 19대 임금으로 등극한 광개토대왕은 아들 장수왕과 함께 눈부신 영토 정복활동을 펼친 부전자전의 전범을 보여줬다. 고구려 영토는 국내성을 중심으로 북쪽 요동지역 만주의 대부분과 연해주지역까지 확장했으며, 남쪽은 한강 이북의 백제와 신라와 국경을 이뤘다. 장수왕은 427년 평양으로 수도를 옮겨 영토를 더욱 확장시켰다.

최근 고구려 두 번째 수도였던 지안시(輯安市) 외곽에 위치한 광개토대왕의 유적지는 일본과 중국에 의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만주침략을 위해 파견된 일본군 장교는 비문의 내용이 일본 고대역사에 불리하다고 판단해 글씨를 돌로 쪼아 변조했다. 그리고 일제는 ‘임나일본부설’에 의해 고구려의 역사를 식민의 역사라고 우기고 1907년에는 광개토대왕비를 약탈하려다가 수포로 돌아갔다. 일본 역사학자마저도 자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중국은 동북공정에 의해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광개토대왕비를 호태왕비(好太王碑)로 고치고 중국 소수민족 유적으로 왜곡했다. 중국은 마지못해 그동안 방치해 왔던 광개토대왕비를 누각을 지어 옮겼다.

화자는 만주벌판을 호령했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발자취가 서린 중국 지린성(吉林省 옛 만주) 지안시(輯安市)를 답사했다. 광개토대왕 유적지 주변은 외화벌이 혈안이 된 중국 잡상인과 노점상들이 득실거렸다. 반면 거대한 광개토대왕 능은 도굴꾼들에게 훼손당해 봉문의 돌이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고 있어 가슴이 아렸다.

광개토대왕 능과 달리 아들 장수왕 능은 의외로 보존상태가 양호했다. 장수왕 능 옆에는 왕비와 공주의 무덤을 북방식이 아닌 남방식 고인돌 무덤으로 안치했다.

국내성은 지안시가지의 강변을 따라 축조되었다. 서문 성터는 아파트단지 뒤로 울타리처럼 쌓여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동서남문의 새 개 석성은 개인 주택 담장으로 사용되는 등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한국은 2002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로 왜곡되고 수난 당하는 광개토대왕의 유적과 고구려 역사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영토 확장의 군주인 광개토대왕의 경외심 고양과 고구려 역사 바로 세우기에 팔 걷고 나서야 할 일이다.



김정길 작가는



전북문인협회 수석부회장,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 , 전북예총 자문위원 등

행촌수필문학회장 역임

교양도서 외 10권, 수필집 외 5권

수상 : 대한민국 국민포장, 전북문학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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