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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11월의 연가

이해숙

기사 작성:  이종근
- 2021년 11월 24일 16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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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아침은 두드림이다. 마당의 인기척에 현관문을 열었다. 마치 문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 낙엽 몇 닢이 다짜고짜 밀고 들어선다. 계단 아래에는 뜀뛰기를 수도 없이 시도하였을, 감잎 한 무리가 제 무게에 겨워 계단 턱을 오르지 못하고 치어다보고 있다. 입동이 지나니, 잎들의 어미도 기력이 다했는지 제 자식들을 순하게 놓아주고 있다. 놓여난 잎들은 밤새 찬바람에 떨며 집안을 기웃거리다 현관문이 열리자 머리부터 디밀고 들어선 것이다. 그래! 너희의 두런거림 때문에 온밤을 괭이잠으로 뒤척였나 보다. 그렇다고 실내에 머물 곳을 마련해 줄 수가 있겠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절정의 가을빛을 끌어당기던 잎들이 밤새 우르르 내려앉았다. 허접스럽게 돌아다니는 그네들을 쓸어 모아 감나무 아래로 갔다. 이효석의 글귀처럼 ‘커피 볶는 냄새’에도 젖어보며, 그들 순환의 완성을 위해 내가 할 일은 정갈히 태워 뿌리로 되돌려 주는 일. 그 일을 부탁하려고 고요한 이 아침에 노크했구나.

11월의 산행은 돌아봄이다. 치열하게 들끓던 볕기가 연두에서 갈맷빛 잎들로 키워내더니 어언, 붉고 까만 결실로 영글었다. 숲은 날마다 새얼굴이다. 그는 늘 대여섯 걸음 앞서 걷는다. 자잘한 다정함보다 묵묵히 앞서가며 한 번씩은 돌아본다. 나무 중에는 꽃다운 향기를 선사하는 마당의 수수꽃다리가 있는가 하면, 유달리 예쁜 단풍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고로쇠나무도 있다. 숲 속에 노란꽃단풍이 폈다. 꽃전등 아래서 잠시 환한 빛 부심에 젖어본다. 산마루터기에는 사방으로 벌판 바람 천지다. 주름진 산등성이에는 소나무가 짙푸르고, 줄걱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활엽수는 위상이 늠름하다. 잎 진 숲, 고적한 군락 새로 곧게 추켜 자란 낙엽송들이 잎을 매단 채 덩덩그렇게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다. 여력을 그러모아, 황량한 절기에도 기죽지 않는 당당한 자태가 책임감을 다하는 가장, 그의 모습을 빼닮았다.

11월의 하늘은 그림판이다. 푸른 하늘이 웅숭깊기도 하여라. 하늘은 참으로 곱고 멋진 구름이 한가득 이다. 구름송이는 자유로운 듯이 맑게 갠 하늘에 유유히 피어나 그림을 그려댄다. 구름 덩이 한 무리가,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철새 군락처럼 떼를 지어 흘러간다. 먼 하늘의 구름이나 머리 위의 것이나 구름은 한가지로 흘러만 간다. 뒤엉키고 흩어지며 뭉개고 다시 그리는 유연한 그림 솜씨. 나도 구름처럼 하늘 그림판에다 엄마의 얼굴을 그려본다. 엄마를 생각하면 콧마루부터 시큰해진다. 여든넷의 연세, 요양병원에 드신 지도 이 년이 훨씬 넘었다. 코로나 사태로 자주 뵙기도 어렵다. 지난 주, 모처럼 안동엘 갔지만 면회도 못하고 돌아왔다. 새봄이 오고 안정이 되면, 엄마랑 며칠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인생은 슬프고도 아름다워라. 꾸무럭한 날씨가 펑펑 함박눈이라도 내릴 낌새다. 밭둑가에 꽃잎 다 날린 무리 진 억새가 저물녘이 다 되도록 손을 흔들고 섰다. 은혜로운 늦가을 햇살이 고적해 하는 모두에게 축복으로 내리쬐기를 빈다. 달랑 가벼워진 달력을 보니 넘쳐나던 시간이 엉거주춤하는 사이 슬몃슬몃 다 빠져 달아나 버렸구나 싶다. 이젠 잉걸불 같던 열정도 세월의 여과로 순화된, 산문(散文) 같은 나이가 되었다. 잊히거나 잊어버렸던 시절이 불현듯 떠올라 그리움이 더하는 계절이다. 환호를 받으며 우월해 하던 젊음도 어느덧 생의 뒤안길로 들어섰지만, 뭐 그리 쓸쓸해 할 이유가 있는가. 여력의 열정, 유유(悠悠)한 세월, ‘문학적 영감’보다는 성실한 노력이 더 훌륭한 덕목이리니.



이해숙 작가는



2007년 수필시대 등단

행촌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시흥문학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완산벌문학상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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