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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길목] 결혼기념일

“해피엔딩을 바란다면 이제라도
서로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지 고민할 시점이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1년 01월 20일 13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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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 )



“우리 어디 안 가요?”

“가긴 어딜 가?”

오늘은 결혼기념일. 아침 나절 아내의 질문 몇 번이고 애써 무시했다. 예순 넘긴 나이에 결혼기념일이 무슨 대수일까 하는 생각, 아내도 기대 갖고 한 말 아니라는 나태한 판단 교차한 탓.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나니 내심 미안했다. 낮에 잠깐 아내를 불렀다.

“우리 외출할까?”

좋다며 쫄랑쫄랑 따라오는 아내. 축복이라도 하는지 하늘에선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우리 전원주택 희망원에서 ‘아름다운 순례길’ 따라 모악산의 커피숍까지 팔짱 끼고 걸었다. 투썸 플레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주문을 하고 창가 앉은 우리. 둘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아내. 맘 상쾌하고 말 경쾌하다. 자글자글한 잔주름이 얼굴에 가득하다.

1984년 1월. 아내와 결혼했다. 그날도 함박눈이 왔던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37년. 짧지 않은 세월, 그래도 헤어지지 않고 달착지근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축복 아닐까. 감사한 일이다.

내 평생 목표는 아내에게 존경 받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게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꿈 꾼다. 보여줄 것, 못 보여줄 것 다 보이고 사는 사이에서 존경이란 간단치 않다. 남들 앞에서는 고상한 척하면서도, 아무 곳에서나 방귀 뿡뿡 뀌는 사이. 부부라는 이름은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가둘 수 없는 그 무엇임에 틀림없다.

남자들 낮 생활은 여러모로 힘들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지치고 힘든 시간을 버텨온 건 곁에 있는 아내 덕분이 아니었을까? 성공한 남성들 모두 하나같이 자신 성공을 아내 공로로 돌리는 까닭이 여기 있지 않을까?

내 나이쯤 되면 남자들 가정과 가족에 서서히 눈 뜬다고 한다. 삼베바지 방귀 새듯 자식들 하나 둘 모두 빠져 나가고 이제 곁에 남은 사람 오직 아내뿐이라는 걸 이맘 때 깨닫기 때문이리라. 아내는 자유롭고자 하나 남편은 갈수록 마누라 의존도 높아만 간다.

얼마 전 일본에서 70대 노인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노후 누구와 보내고 싶냐 물음에 남성 70% ‘반드시 아내와 지내고 싶다' 했다. 반면 여성 66% ‘절대 남편과 안 보내겠다’ 대답했다. 최근 한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 암환자가 아시아 1위이고, 여성 암환자 85% 화병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50~60대 중년 여성 암환자들 “수십 년 아내와 엄마로 헌신하며 참고 살았는데 이제 좀 쉬려 하니 암에 걸렸다”며 분노를 나타내기도 했단다.

내 아내도 그럴까. 내 아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아내들에게 자신 삶을 한마디로 규정해 보라고 한다면, 많은 분들 '참고 산다' 대답하리라. 남편을 향한 그 화가 쌓이고 쌓여 암이 되는 건 아닐까. 언젠가부터 아내가 한숨 푹푹 쉬며 약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한다면 그건 분명 '화병'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천생연분일까, 평생 웬수일까. 지난 37년 아내에게 인고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은 죄가 워낙 많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더욱 큰 문제다. 지금처럼 참고 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해피엔딩을 바란다면 이제라도 서로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지 고민할 시점이다. 몸살기 있다며 병원으로 향하는 아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결혼 37주년 밤 착찹하기만 하다. 내 아내는 무슨 생각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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