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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전북에 83개 장이 섰다


옛 이야기에서 전북을 만나다:서유구의 예규지
전주는 부내대장(남문밖), 부내대장(서문밖), 부내소장(북문밖), 부내소장(동문밖), 봉상장 등 11개로 가장 많아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9월 21일 08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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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고위 관료를 지낸 풍석 서유구(1764~1845년)가 40년에 걸쳐 쓴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시골 또는 전원을 의미하는 임원(林園)에서 살아가는 선비들에게 필요한 각종 살림(경제)에 관한 생활 지식을 총망라했다.

농사에 관한 것(본리지 本利志)부터 시작, 식용식물 및 약용식물에 관한 내용(관휴지 灌畦志), 옷감의 직조와 염색에 관한 내용(전공지 展功志), 음식과 술 등 먹거리에 관한 것(정조지 鼎俎志), 의약에 관한 것(인제지 仁濟志), 주거생활과 건축·도구·일용품에 관한 것(섬용지 贍用志), 글씨와 그림, 활쏘기 등에 관한 것(유예지 遊藝志), 집터잡기와 집가꾸기에 관한 것(상택지 相宅志), 재산증식과 상업, 전국의 시장에 관한 것(예규지 倪圭志), 휴식과 오락, 취미생활에 관한 것(이운지 怡雲志) 등 모두 16개 분야(志)로 나뉘어 있다. 서유구는 이 책을 쓰면서 동의보감 등 우리나라 책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서적 등 모두 853종을 참고하고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했다

'예규지'를 보면 당시 팔도시장은 전라 187개를 비롯, 1,053개였다. 전북은 83개(금산 제외)로, 전주는 부내대장(남문밖), 부내대장(서문밖), 부내소장(북문밖), 부내소장(동문밖), 봉상장 등 11개로 가장 많다.

전주 부내대장(府內大場)은 매달 2일 2가 든 날 남문 밖에 서고, 매달 7이 든 날에 서문 밖에, 부내소장은 매달 4가 든 날에 북문 밖에, 매달 9가 든 날에 동문 밖에 섰다. 북쪽에서는 중국의 재화를 들여와 유통하고, 동쪽에서는 일본 물산을 들여와 유통하기 때문에 상인들이 모여들고 온갖 물건이 넘쳐나니 나라 안의 큰 시장이었다.

부내대장은 조선 후기 전국 15대 시장의 하나였으며, 대구와 평양, 또는 대구와 공주와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맞다. 1890년대까지 번성했던 전주의 장은 남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네 개의 장이 있었다. 남문외장이었던 남문시장, 동문외장의 동문시장, 북문외장 시장, 서문외장 시장이다. 이를 ‘남밖장’ ‘동밖장’식으로 불렀다. 남문시장인 남밖장이 지금의 남부시장이다.

‘시생도 팔도의 장판 어디 안 가본 데가 없소. 안양의 밤장, 통영의 갓장, 병점의 옹기장.공릉의 짚신장, 안동 삼베장, 한산 임천·정산(定山)의 모시장, 신탄진의 다듬잇돌장, 황간의 대추장, 평안도 성천(成川)`청주`미원(米院)의 담배장, 정주(定州) 납청(納淸)의 유기장, 회령`김천의 쇠장, 안성의 유기장, 양주 밤장〔栗場〕, 옹진 멸치새우장, 보은의 대추장, 완도의 김장, 영암 참빗장, 담양 죽물장, 나주의 소반장〔小盤場〕, 평안도 강계의 인삼장, 함안의 감장, 전라도 임실의 연죽장(煙竹場), 아산의 황조기장, 삼척의 게장, 전주의 한지(韓紙), 문경의 제기(祭器), 은진의 육날미투리, 평해(平海)의 미역장, 옥천의 면화장, 진주 진목장(晋木場), 홍원(洪原)의 명태장, 마산포 멸치장, 춘향이 울다 간 남원장, 장가 못 간 놈 섭섭한 아내장(竝川場), 삼가장(三嘉場), 장호원장, 치자꽃 많이 파는 남해장, 광양의 푼주장, 그저 팔도의 장판을 청개구리 밑에 실뱀 따라다니듯 굴러다니며 헛손질 곤댓짓으로 타관 봉노 신세 진 지 삼십 년에 못해 본 일이 없소만 딱 한 가지 못해 본 일이 있소이다 그려’

이는 김주영의 소설 ‘객주’ 속에 나오는 ‘조선팔도타령’이다.

그는 전주 남부시장을 '성문 밖에서부터 담배 파는 연초전, 담뱃대를 파는 연죽전, 백미와 잡곡을 파는 시게전(米廛), 건어물을 파는 생선전, 놋그릇을 파는 유기전, 한지 파는 지물전. 미처 헤아려 챙길 사이도 없는 갖가지 물화들이 길 양편으로 쩍 벌여 내놓였는데 그 길이가 남문에서 서문까지의 5리 길 행보를 꽉 메우고 있었다’고 적었다.

장타령 솜씨에도 격이 있다.

각설이들이 거리 예술가로서 흥행을 효과적으로 하면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장터이다. 장날이 되면 장바닥을 메울 정도로 많은 장꾼들이 모여든다. 거리 예술가들도 구경꾼이 많을수록 신나고 흥겹다.

‘누른 버들에 김제장 쑥 솟았다 고산장 철철흘러 장수장 삼도도해 금산장 일색춘향에 남원장 오늘가도 진안장이요 코풀었다 흥덕장 술은 있어도 무주장 술은 싱거도 전주장. 어서 가자 어서 가 오란 곳은 없어도 우리네 갈길은 바쁘요’ 장타령을 하면서 대뜸 '코 풀었다 흥덕장'이 나온다. ‘코 풀었다 흥덕장은 더러워서 못 보고’

이를 흥해장이라고도 한다. '흥'이 두운에 나오는 것은 코 푸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가 바로 '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푼 장은 더러워서 못 본다고 한다.

다음은 이기화 전 고창문화원장의 고창 장타령이다.

‘화룡장 뜨거워서 못보고, 왔다 갔다 개갑장 다리 아퍼서 못보고, 코풀었다 흥덕장 더러워서 못보고, 사흘 여드레 법성장 조금장이라 못보고, 안진머리장 굴죽으로 속달래고, 알미장은 곱트름이 알찌고, 니거리장 늘락져서 못보고, 무장읍장 억씨여서 못보고, 이장 저장을 다 다니다가 고창장에서 종지었네’

민초들의 애환을 담은 익살스러운 `장타령'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이 남긴 다양한 계층의 전통들을 한 무대 위에 풀어 놓은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일 임방울이 다시 살아나 장터를 방문해 장타령을 한다면 그 옛날의 명성을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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