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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창] 소쩍새가 주는 교훈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선함도 죄악이 될수 있다는 경각심 가져야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9월 17일 13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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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학예연구사 백덕규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 날의 일은 마치 지침서처럼 꺼내어 되새김질하게 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일상 속에 흔히 있을법한 별일 아닌 일이라 할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기억 속의 것들이 버무려져 특별한 이야기가 되거나, 가슴에 새겨지는 문신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문화재라는 것은, 크게 숭례문이나 다보탑처럼 인류가 조성한 유형의 문화적 산물인 유형문화재가 있고, 전통악기를 만들거나, 전통가구를 만드는 기능분야와, 판소리, 기악연주등의 예능 분야처럼 형체는 없으나 사람을 통해 재현할 수 있는 무형문화재가 있지만, 학술적 가치가 높거나 멸종위기에 있어 보호해야 할 식물이나 동물과 같은 것들도 천연기념물이라는 문화재적 장치를 활용하여 보존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와 같은 문화재 전문 학예연구사의 경우, 종종 전깃줄에 날개를 다쳐 신음하며 쓰러져 있는 독수리나 농약을 먹고 죽어가는 고니등을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만 하는 마음아픈 일들도 겪어야만 한다.

그날은 참 무더웠던 날이었던 것 같다. 조류협회 회장님으로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쩍새 새끼 한 마리가 어느 가정집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한 통의 신고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가보았다. 그 옛날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갓 시집온 며느리가 솥이 작아 식구들에게 밥을 다 퍼주고 그 며느리는 결국 밥을 굶다 죽어, 소쩍새로 환생했다는 이야기와 또 한편으로는 솥이 적을 만큼 소쩍새가 울어대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네 정서에 깊이 스며든 여름철새인 소쩍새를 가까이서 보게 된 것은 처음의 일이었다.

집주인으로부터 소쩍새 새끼를 가정집에 들여놓게 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길에 왠 솜뭉치가 있길래 차를 세우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아기새 한 마리가 혼자서 너무 가엽고 위태로워 보여 불쌍한 마음에 집으로 데려왔으며, 나중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쩍새의 새끼란 것을 알고 신고하게 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둥그런 솜뭉치가 땡그랗고 노오란 단추같은 두눈을 부릅뜨고 와이퍼처럼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는 것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필자라도 집으로 데려오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아기소쩍새가 둥지에서 독립하기 위한 이소기간이었기 때문에 어미가 새끼들을 옮기다 잠시 놓아둔 순간 사람의 눈에 발견되어 영영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선한 마음이라 착각했던 마음의 작용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그날 필자 또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는 걸 물고기 부레 처럼 떠올리게 되었다. 추운 겨울날 집 앞에 새끼고양이가 혼자 울고 있는 것이 가엽고 안타까워 따듯한 물에 샴푸로 목욕을 시키고, 우유를 데워 배불리 먹인 다음 제자리에 놓아주었지만,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새끼고양이의 경우 체취가 달라지거나 하면 어미가 새끼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동안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바로 그것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책임지지 못 할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이처럼 매우 위험한 일 아닌가?

생물이건 아니건, 행정이건 정치건, 모든 삼라만상은 관계 속에 얽혀있다.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상대에게도 선한 일인가?, 결과적으로도 선한 일이 될수 있는가? 다시 한번 되물어가며, 그 관계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엉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의 기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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