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월요아침] 구타 없는 군대 생활 가능하다

기사 작성: 정동영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 - 2014.08.17 19:39

# 요즘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들은 잠을 편히 못 잔다. 구타와 가혹 행위로 숨진 윤 일병이 내 아들 같아서다. 몇 해 전 우리 집 둘째가 해병대에서 전역했다. 제대한 뒤 처음에는 말을 안 하더니 한참 시일이 흐르자 군대에서 당한 가혹 행위 이야기를 아내에게 털어놓은 모양이었다.

그 날 아내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전해 들은 나도 가슴이 아팠다. 1970년대 내가 강제징집으로 군에 갔을 때나 지금이나 폭력과 구타 등 후진적 병영 문화는 변한 게 없다.

# 내가 잘 아는 예비역 중장 정두근 장군은 2000년대 현역 사단장과 군단장 시절 병영 내에서 존중어를 쓰도록 하고 구타와 폭력을 추방하는 지휘 방침을 실천하다가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게 핵심이다. 군 최고 지휘부가 낡은 군대 문화를 고정 관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정 장군은 말했다. "일제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의 동물적 복종을 위해 만들어진 병영 문화가 해방 뒤에도 친일 부역자들이 계속 군대를 맡으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내려온 것이다"

# 어떻게 해야 군대 폭력을 없애고 병영 문화를 개혁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식으로 일벌백계를 백번 한들 고질적인 군대 문화는 바뀌지 않는다.

기본 해법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군 인권기본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법에 병사의 기본권을 명시하고, 군에서 인권 교육을 의무화하며, 군 내부 인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독립적 민간 감독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군 인권법 제정은 이미 2011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후 1년 동안의 조사 기간을 거쳐 국가인권위가 정부에 권고한 내용이기도 하다.

# 1977년 내가 32개월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면서 시작된 내무반 모임이 37년째 계속되고 있다. 부대가 경기도 부천시 소사에 있었기 때문에 모임 이름을 <소사원>이라고 지었다. 대한민국의 별난 모임 가운데 하나이리라.

내가 근무하던 33사단(지금의 17사단)은 서울 근교에 있어 "보리 카투사"라고 불렸다. 하지만 사단 본부대 근무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특히 본부대 내무반 생활은 졸병에게 가혹했다. 365일 날마다 저녁 6시면 내무반 "집합"과 "결산"이 반복됐다. 말이 좋아 집합이고 결산이지 내용인즉 날마다 두들겨 패고 맞는 일이었다. "식기가 더럽다"느니 "관물대 정돈이 삐툴빼툴 하다"느니 "걸음걸이에 군기가 빠졌다"느니 집합과 결산 꺼리는 천지 사방에 많았다. 하루도 안 맞고 넘어가는 날이 없었고 엉덩이는 늘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등병이던 나는 갑자기 보안사 찦차에 실려 연행됐다. 이른바 서울대학생 간첩단 사건(훗날 조작 사건으로 드러났다)에 연루된 혐의였다. 보안사 안가 지하실에 끌려가 보름 동안 주먹과 발길질, 몽둥이찜질을 당하는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뒤 간신히 풀려났다.

보안사 찦차에 실려 자대 복귀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집합"과 "줄빳다"였다. "줄빳다"는 내무반원 40명 전원을 2m 넓이의 복도를 사이에 두고, 한쪽 침상에는 손을 짚고 다른 쪽에는 발을 뻗어 엎드려 뻗치기 자세를 시킨 뒤 고참 순으로 차례차례 졸병들의 엉덩이를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려치는 집단 구타 행위였다.

보안사에서 당한 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져 있던 나는 어느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벌떡 일어나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며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고참병들을 향해 돌진했다. 모두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내무반 소동 이후 나는 완전히 "미운 오리 새끼"로 낙인 찍혀 완벽한 왕따가 됐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그러나 내 젊음을 이런 식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같은 기수 동기생들을 포섭해 설득했다. "내무반 혁명을 하자. 지금 같은 군대 생활은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냐. 안 때리고 안 맞는 내무반 개혁을 한번 해보자." 동기생들이 호응했다.

얼마 후 병장으로 진급하고 동기생이 내무반장을 맡게 됐다. 내무반원들에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1."집합" 시간을 없애고 그 시간에 축구를하자. 2. 모두가 행정병으로 글을 적을 수 있으니 '문집'을 만들어 보자. 3. 제대 후 사회에 나가서 서로 돕고 살 수 있게 모임을 만들자.

그 날 이후 내무반에서 구타와 폭행은 사라졌다. 내무반 개혁의 효과는 놀라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집합 빳다' 대신 '집합 축구'를 하는 동안 형제애가 생겼다. 제대 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서로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졌다. 서툰 솜씨지만 등사기를 밀어 문집을 만들면서 서로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됐다.

내가 제대하는 날 내무반에 모여 떠나는 인사말을 하는데 후임병 한사람이 훌쩍였다. 코끝이 찡했다. 3년 군대 생활 헛 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현역 군복을 벗고 '개구리복'(예비군복)으로 갈아입은 날 군 생활이 아쉬워 눈물을 보일 줄은 미처 몰랐다. 구타 없는 군대 생활은 충분히 가능하다. 새로 임명된 우리 고향 출신 육군참모총장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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