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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오월에 반하다

정성려

기사 작성:  이종근 - 2023년 05월 11일 13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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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자연은 마냥 아름답고 신비롭다. 이팝나무 가지마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려 앉아 있다. 이팝나무 위에 쌓인 하얀 눈이 이대로 녹지 않고 오래도록 그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꽃을 지우지 않는 나무는 어떻게 될까. 나는 욕심이 참 많다. 내 것도 아닌 길가에 늘어선 나무를 욕심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자니 욕심에 미치지 못하면 혼자 삐지기도 한다. 이를 테면 시골 아줌마의 애증적 삶이라고 할까. 이러는 내 모습이 봄 마중에 수줍은 개나리 같기도 하다. 인생길 따라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더디게 걸어왔는데 육십을 넘어서면서 세월은 토끼처럼 뛰어가고 있다. 어차피 정해진 운명의 시간에 더 많이, 더 높이,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올라온 산에서 안전하게 잘 내려가려는 귀책일 것이다. 쓴맛을 보아야 달콤함을 알고 단맛을 알아야 씁쓸함을 알 듯이 이 모든 일들이 엉켜 나름 인생이 되는가 싶다. 이른 새벽 텃밭을 둘러 볼 요량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작년 가을 어느 날, 인사도 없이 강남으로 갔던 제비가 돌아와 처마 밑에서 거처를 물색 중이다. 길을 잃지 않고 용케도 우리 집을 잘 찾아왔다. 해마다 봄기운이 돌면 은근히 기다려지는 제비다. 이제 제비도 우리가족처럼 느껴진다. 작년에 우리 집에서 살다가 강남으로 갔던 그 제비일까? 우리 제비라는 표시를 해놓지 않아 알 수가 없다. 한 쌍으로 보이는 제비 두 마리가 부지런히 뭔가를 물어 나르며 들락거린다. 아니, 별일이다. 새집을 짓는 것이 아니고 작년에 지은 헌집을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새집을 지을 곳이 마땅치 않은 것 같다. 해마다 처마 밑에 둥지를 지어 놓으니 헌 둥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적당한 자리가 없는가 보다. 적당한 헌집을 한 채 뚝딱 리모델링해서 고쳐 놓았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놀라 날쌔게 둥지에서 날아간다. 매번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그렇게 놀랠 거면서 하필 현관문 위에 둥지를 택할게 뭐람. 두 마리가 다정하게 전깃줄에서 노래하며 놀더니 어느 날부터 한 마리만 보인다. 아마 암컷은 새끼를 부화하려고 둥지 안에서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수컷으로 보이는 제비는 가끔씩 알을 품고 있는 암컷에게 먹이를 나르는 모습이 이따금씩 눈에 띈다. 때로는 긴 전깃줄에 외롭게 앉아 지지배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대화를 하자는 건지 목청을 높인다.

요즘 며칠 사이 현관문을 나서면 발을 내딛기도 전에 코끝을 자극하는 진한 꽃향기가 집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화단에 피어있는 연보라색 라일락꽃향기다. 어찌나 향기가 진한지 앞집과 옆집, 뒷집 마당까지 덩실덩실 넘나든다. 옆집아줌마도 라일락 꽃향기에 반해서 까치발을 하고 담장위로 넘어다본다. 작은 꽃에서 내뿜는 진한 꽃향기를 욕심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꽃향기에 반해서 훔쳐가고 싶다고 한다. 텃밭 가장 자리에 심어 놓은 과실나무 중에서 하얀 매화꽃이 제일 먼저 봄을 알린다. 그 다음으로 요염하게 목련이 자태를 드러내고 살구꽃과 앵두꽃이 연분홍색을 띄고 예쁘게 피어 거듭 봄소식을 한아름씩 안고 왔다. 노란 수선화도 빵긋 얼굴을 내밀고 올라온다. 과실나무 꽃들이 지고 뒤이어 형용 색색의 철쭉이 꽃 대궐을 이룬다. 철쭉이 오랜 시간 햇볕에 퇴색 되며 떨어지고 곧이어 연보라색의 라일락이 향기를 내뿜으며 우리 집을 에워싼다. 그 옆에서 향기 없는 작약도 한 몫 하려고 나지막하게 숨을 죽이며 꽃봉오리를 탐스럽게 맺고 있다. 곧 터트릴 기세다. 나는 지금 이렇게 화려한 우리 집 뜰 안에서 오월에 반해 있다.



정성려 수필가는



대한문학 등단, 전국편지쓰기대회 은상,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행촌수필문학상, 완산벌 문학상, 2022년 올해의 수필인상 수상

지은 책:엄마는 거짓말쟁이, 커피와 숭늉, 가을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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