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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교수의 전북문화재이야기]학예일치의 대가, “석정 이정직의 유저유묵”

“전북서화단의 토대를 단단하게 했던 석정 이정직은 학예일치를 이룬 대서화가로, 김제 서맥의 큰 뿌리”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1년 06월 22일 13시49분

/이승연(서예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몇 년전부터 왕과 왕후, 독립운동가, 서화가 및 사상가들의 유묵이 보물로 지정되고 있어서 글씨 및 서예작품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숙종·정조 어필, 인목왕후 칠언시를 비롯하여 (보물569-1~26호), 추사 김정희의 (보물 제547-2호) · (국보180호) · (보물 제1980호), 그리고 이황, 한석봉, 황기로, 안평대군, 양사언의 글씨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전북에는 근대 서화계에 큰 획을 긋고, 실학자로서 학예일치를 이룬 석정 이정직(石亭李定稷, 1841~1910)의 저서와 글씨인 “석정이정직유저유묵”(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9호)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문화재는 총 15종 30책으로 구성된 전적류로, 『연석산방미정문고』 9책과 『연석산방미정문고별집』 2책 외에 『연석산방미정시초(燕石山房未定詩草)』 5책, 『서대전』, 『만사록』, 『시전일과』,『시경일과』,『시경주해』,『시학증해』,『묵예금경』,『전사활역』,『간오정선』,『작가지남』,『척독이지』,『자음고』,『산학전수』 등이 있다.

석정은 김제시 백산면 요교리 출신으로, 본관은 신평, 자는 형오(馨五)·원보(元甫), 호는 석정(石亭)이다. 조선시대 이조판서를 지낸 이상원의 후예로, 어려서는 서당과 부친 이계환(李啓煥)으로부터 기초학문을 수학한 후 분야별로 최학봉, 강회민, 안정봉을 스승으로 모셔 여러 분야를 학습하여 시문서화 및 음양, 복서, 의약, 성력, 율려, 산수, 명물에 이르기까지 깊게 연구하였으며 이에 관한 저서들을 남겼고, 부친과 서화첩을 통한 독학으로 이루어 낸 서화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석정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쌓아온 성리학의 기초위에 28세 때인 1869년(고종 6)에 야인으로 어영대장 이봉구를 따라서 중국으로 가게 되면서 서양철학 및 실학에 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연경에 머무르는 일년 동안 저명한 중국문사들과 교유하면서 중국의 시문학에 대한 고증과 논편, 성리학에 있어서의 정주학과 양명학에 대한 변해와 논편, 칸트 등 서양 철학에 대한 연구와 동서 철학의 절충론 등 여러 방면에서 선각자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석정의 저서는 조선시대의 고전적인 학문 체계를 근대적인 학문 체계로 전환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석정의 시작(詩作) 또한 뛰어나 구례의 매천 황현(梅川黃玹, 1855~1910], 만경의 해학 이기(海鶴李沂, 1848~1909)와 더불어 ‘호남삼걸’이라 불렸다. 석정이 타계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의 학문적 영향력과 서화의 맥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호남의 자존심을 지켜 주고 있다.

이러한 석정의 학문과 예술이 꽃피워진 시기는 50대 후반부터이다. 당시 큰 변환점이 된 사건은 전주에서 약포를 운영하던 54세에 동학농민운동때의 화재로 모든 재산과 저술했던 자료들이 산실되자 크게 낙담하여 고향인 김제로 귀향하면서부터였다. 김제로 돌아와 당호를 ‘백석산방’ ‘연석산방’이라고 짓고, 서실은 ‘호서실(好書室)’라고 하여 책을 좋아하고, 제자들을 양성하고, 저술활동에 전념하면서 학자로, 서화가로 살았다.

석정은 서예에서는 구양순체, 행서는 미불체와 동기창체, 안진경체를 많이 썼고, 특히 해서와 세필에 매우 뛰어났다. 그림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 순수 묵화로 사군자를 많이 그렸고, 괴석·산수·수목·조류·어류를 소재로 한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특히 「괴석도」는 필법이 매우 특이하여 당대의 으뜸으로 꼽히기도 하였다.

이러한 석정의 서맥은 위로는 조선 중기 이계맹(李繼孟)·유집(柳緝)·송일중(宋日中)의 맥을 이어 왔으며, 제자인 조주승(趙周昇)·송기면(宋基冕)·강동희(姜東羲)·최규상(崔圭祥)·유영완(柳永完)·조병헌(趙秉憲),김연호(金然灝),나갑순(羅甲淳)등을 거쳐 송성용(宋成鏞)·송하영(宋河英) 등으로 이어졌다.

이와같이 석정이 한평생 쌓아왔던 학문과 예술을 일치시키고자 했음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추구했던 최고의 이상향이였다. 말년을 김제에 칩거하여 오롯하게 일가를 이루었으니 그 문화재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후 석정의 학문과 글씨, 그리고 그림은 전북서화단의 뿌리가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열매를 맺고 있으니, 이 유물 또한 보물로 지정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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