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서평]고통과 무료함의 인생 진자

[책마주보기]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서운정)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7월 21일 15시03분

쇼펜하우어에게 철학이란 단순한 사유의 결과가 아니다. 삶이라는 고통의 진자에서 자신을 붙들기 위한 ‘내면의 갑옷’이었다. 그는 인간 존재를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결핍을 좇는 맹목적 ‘의지’의 존재로 보았다. 이 의지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으며 충족 뒤에는 반드시 무료함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인간은 고통을 피해 달아나지만 그 끝에서 다시 지루함이라는 고통을 만난다. 그렇게 삶은 끝없이 진자처럼 흔들린다. 이 진자운동은 멈추지 않으며 괴로움과 권태 사이를 유영한다. 이 진자운동을 이해한 사람만이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이 철학적 통찰을 오늘날의 독자들 특히 인생의 반환점에 선 이들에게 건넨다. 강용수는 쇼펜하우어의 냉철한 통찰을 삶의 언어로 풀어내면서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제안한다. “삶은 고통이다”라는 명제를 위로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삶을 견디는 힘을 기르자는 철학적 조언이 담겨 있다. 이러한 통찰은 마흔이라는 시점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삶의 어느 한 고비를 넘어서면 외부의 성취보다 내면의 평형을 구하게 된다. 강용수는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단순히 해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현대인의 감정 구조 속으로 끌고 들어와 삶과 철학이 맞닿는 경계에 내려놓는다. 30개의 짧은 장으로 구성된 성찰의 조각들은 마치 일상의 파편 속에서 건져낸 깨달음의 문장처럼 다가온다. 그 조각들을 따라 읽다 보면, 문득 삶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특히 이 책이 주는 묘한 위로는 그것이 ‘위로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고통을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은 피할 수 없으며 그 안에 머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왜 나만 힘든가?”라는 질문에서 “인간이기에 아프다”는 인식으로의 전환이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는 순간 고통은 우리를 압도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다가온다. 진자의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지만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중심을 잡으려는 태도를 배운다.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실천적 철학이다.

그는 묻는다. ‘삶은 왜 이토록 괴로운가?’가 아니라, ‘괴로움을 안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이 삶의 본질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역설적으로 삶은 가볍고 단단해진다. 강용수의 해석은 그 단단함에 손을 얹는 법을 가르친다. 우리는 모두 진자 위를 걷고 있다. 욕망과 권태 사이, 기대와 실망 사이, 사랑과 상실 사이를 오가며 흔들린다. 하지만 진자의 흔들림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그 진자 위에 조심스럽게 중심을 잡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그 중심을 찾는 여정에 조용히 한 줄의 철학을 건넨다.삶은 고통이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야말로 삶을 견디는 가장 단단한 내면의 무기이며, 그 무기를 쥐고 흔들림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철학이고 그것이 어쩌면 성숙일 것이다.

서운정 작가는

군산 출신으로, 제18회 ‘바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솔바람소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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