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인문학 속 클래식] ··· 취미 속 클래식vol.2

2. 커피칸타타, 바흐
“천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와인보다 감미로운 커피...!”

기사 작성: 이주용 - 2024년 04월 29일 14시24분

[인문학 속 클래식]의 첫 챕터, ‘취미 속 클래식’ 중 첫 주제는 ‘바리스타 베토벤’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일 아침 60알의 커피를 손수 골라 추출해 음미했던 커피애호가 베토벤의 이야기와 이에 어울리는 그의 가곡 에 대해 알아보았다.

‘취미 속 클래식’의 두 번째 주제로 베토벤 못지 않은 커피매니아였던 음악의 아버지, 바흐(J.S.Bach,1685-1750,독일)의 이야기로 인문학 속 클래식 이야기를 이어가 보고자 한다.

커피는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이 물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로 그 역사가 무려 1,000년이 넘는다. 커피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인 칼디(Kaldi)의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다.

칼디는 어느 날 자신이 기르는 염소들이 흥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를 유심히 관찰한 끝에 염소들이 들판에 있는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으면 흥분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열매가 궁금해진 칼디는 직접 먹어보았고 그 후 피로감이 사라지고 활력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칼디는 곧장 인근의 이슬람 사원 사제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빨간 열매의 각성효과는 여러 사원으로 퍼지게 되었다. 커피는 이러한 효능으로 인해 신비의 비약으로 여겨지며 홍해를 건너 이집트, 메카등을 거쳐 온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고 곧 혈액순환 촉진제, 지적 자극제, 비타민 결핍 치료제 등 고귀하고 신비로운 약재로 전세계에 널리 퍼졌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00년대 중 후반, 외국선교사와 외교관에 의해서였다. 아랍의 커피가 예멘의 모카(Mocha)항구를 통해 유럽에 본격적으로 교역되었듯 우리나라는 항구도시 인천을 통해 커피가 수입되었다.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에 의해 커피가 처음 소개되고 대중화되었으며 ‘가베’라는 이름으로 점차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고종 황제가 커피를 애호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1900년대 초반, 서울 중구 정동의 손탁호텔 1층에 커피 전문점이 문을 열며 한양의 커피 문화를 선도했다. 이를 따라 장안 곳곳에 문을 연 커피하우스는 개화기의 지식인, 예술가들이 모여 시국과 문학, 예술을 토론하는 장소로 사랑받았다.

이처럼 조선의 커피사랑이 태동되던 1900년대 초 보다 약 200년이 앞선 1700년대, 저 멀리 유럽에선 커피하우스가 성행하고 커피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에서 전해진 커피는 날이 갈수록 더욱 확산되어 귀족,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행했으며 그들이 함께 모여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커피하우스는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 정치와 철학,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하는 사교의 장이였으며 그 곳에서는 계층 간 구별 없이 소통이 가능해 근대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의 탄생되는 장이 되기도 했다.

바흐가 칸토르(Kantor, 음악감독)로 활발히 활동하던 독일 라이프치히(Lepzig)에도 ‘침머만’이라는 대표적 커피하우스(Zimmermannsches Kaffeehaus)가 있었는데 이 곳에서 바흐는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음악가들의 모임)’이란 연주단체를 이끌고 10여년간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다.

이 곳의 주인 고트프리트 침머만(Gottfried Zimmermann)은 바흐에게 카페에서 연주할 만한 커피 주제의 곡을 의뢰한다. 대중들에게 커피와 카페의 홍보까지 할 수 있는 일종의 홍보용 음악을 의뢰한 것인데 바흐는 고민끝에 조건부로 작곡을 승낙하게 된다. 그 조건은 바로 카페의 커피를 바흐가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바흐는 작가 헨리치의 대본 아래 곧 한 곡을 완성해 선보인다. ‘커피 칸타타’라는 제목의 이 곡은 약 25분 길이의의 짧고 경쾌한 곡으로 일종의 작은 희극적 음악극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는 평생 오페라 장르를 작곡하지 않았지만 그가 음악극 창작에도 얼마나 뛰어났는지 이 곡을 통해 알 수 있다.

본래 칸타타'(Cantata)라는 음악은 '노래한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의 '칸타레(Cantare)'에서 유래했으며 우리에겐 커피 음료로도 많이 익숙하다,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이 성악곡은 대개 소규모 실내악단과 함께 연주되며 독창과 중창, 합창 형식의 짧은 곡들로 구성된다. 칸타타는 대개 종교적인 내용의 '교회 칸타타(cantata da chiesa)’와 소규모 오페라와 같은 ‘세속 칸타타(sonata da camera)’로 나눌 수 있는데, 교회 칸타타가 종교적인 내용을 담아 엄숙하고 간결한 분위기를 갖는 반면, 세속 칸타타는 자유로운 내용에 극적이며 기교적인 것이 표현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독실한 루터파 신자로 평생 교회음악에 헌신해 온 바흐는 마치 일탈을 하듯 이 칸타타에 세속적인 내용과 유머러스하면서도 극적인 표현들을 유감없이 담아낸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도 대부분의 칸타타들과 마찬가지로 ‘레치타티보(Recitativo)’와 ‘아리아(Aria)’로 구성되는데 레치타티보는 주로 스토리전개와 주인공이 처한 상황등을 설명하는 일종의 내래이션(Narration)을 뜻하며 아리아는 주인공의 감정을 담아 부르는 선율을 말한다. 이 곡에는 해설자 역할의 내레이터와 함께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커피를 너무나 좋아하는 딸과 딸의 과한 커피사랑을 말리는 아버지가 그들이다. 이 곡은 총 10곡으로 구성되며 마치 작은 희극 오페라와 같은 형태에 풍자와 익살로 가득한 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독일에서는 ‘커피를 마시면 얼굴이 까매진다’,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해 여성들에게 커피를 금지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커피칸타타‘는 이러한 당시의 사회적 논쟁을 풍자적으로 담고 있다. 아버지 ‘슐레드리한’은 딸 ‘리스헨’이 커피를 못 마시게 하려고 결혼 금지, 산책 금지, 쇼핑 금지 등 온갖 협박과 회유를 하지만 그럴수록 딸의 커피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져만 간다. 리스헨은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하지만 혼인계약서에 아버지 몰래 커피 자유섭취 조항을 삽입하는 기지를 발휘하며 커피와 결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한다.

극 중에서 딸 리스헨은 아리아 '커피는 어쩜 그렇게 맛있을까'를 부르며 커피의 맛과 향을 한껏 찬양한다. 아리아의 가사엔 '커피'라는 단어가 수없이 반복되며 청중들이 더욱 커피를 떠올리게 하는데, 바흐는 탁월한 CM송 작곡가였다 할 수 있겠다. 아리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아 어쩌면 커피는 이렇게 달콤할까. 천 번의 키스보다 더 사랑스럽고 모스카토 와인보다 더 감미롭네. 커피,커피! 누군가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아! 어서 커피 한잔을 채워주세요.”

베토벤의 가곡 ‘Ich liebe dich’를 서늘한 새벽녘에 뜨거운 커피와 감상했다면 리스헨이 부르는 이 경쾌한 아리아는 맑은 하늘 아래의 테라스에 앉아 따뜻한 햇살과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쨍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즐겨보는 건 어떨까,

/이주용 전주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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