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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하는 사유의 깊이

김스미의 미술산책〈53〉 ‘금동 반가사유상’

인간 생로병사, 번뇌의 명상 모습을 조각
뛰어난 조형성과 당시 주조 기술의 완성형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1월 31일 14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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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반가사유상, 1962-1(78호)' 6세기 말, 83.2cm



'금동 반가사유상, 1962-2(83호)' 7세기 초, 93.5cm,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목조 반가사유상' 7세기경, 125cm, 교토 고류사



작품을 보며 생각의 깊이를 느끼면 명작이다. 생각을 넘어 무심의 아우라가 밀려오면 부유하는 영혼까지 치유하는 걸작이다. 어떤 장르든지 예술의 세계는 아득히 멀다. 그 깊이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뛰어난 여류화가가 있었다. 초대 전시회에서 평론가에게 ‘당신의 작품은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라는 악의 없는 조언을 듣는다. 그녀는 깊이를 생각하다 붓도 못 잡고, 밥도 못 먹고 일상이 망가진다. 자신이 그린 그림마저 찢어버리고 방송 탑 위에서 투신한다. 이에 평론가는 ‘무자비한 깊이에의 강요를 이기지 못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이다’라고 기고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그로데스크한 단편이다.

예술은, 예술가는 깊이를 표현하기에 목숨을 건다. 그 끝 모를 깊이를 끝장내는 작품이 삼국시대에 만든 ‘금동 반가사유상(국보, 1962-1.2, 옛 분류번호 제78호, 제83호)’이다. 78호는 1912년, 83호는 1920년대 발견되었으나 작품 제작 장소에 대해서는 신라와 백제가 아직도 전쟁 중이다. 반가사유상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였을 때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뇌하던 명상 모습이다. 삼국시대, 당시에 유행하던 미륵신앙을 형상화한다. ‘반가사유’의 독특한 자세를 표현한 이 조각은 뛰어난 조형성과 당시 주조 기술의 완성형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사유의 세계다. 특히 83호는 3개의 둥근 산 모양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의자에 걸터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발은 왼쪽 다리 위에 걸쳤다. 반가(半跏)다.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뺨에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사유(思惟)다. 완벽한 신체 비례와 편안하게 앉아있는 환상적인 생동감이 조화의 극치다. 83호는 목걸이 외에는 장식이 없는 단순함으로 세련된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반가사유상의 부푼 발바닥은 중생을 위한 고행의 흔적이다. 발목을 쓰다듬는 부처의 왼손은 못다 보살핀 중생을 향한 부처의 따뜻한 손길이다. 자비롭기가 한량없고 미치는 곳이 무량하다. 당시 크게 유행한 금동양식의 보살상(菩薩像) 반가사유상은 국내외 총 40여 구가 있다. 그중 백미인 두 작품 중 78호는 83호에 비해 화려하다. 두 반가사유상의 비교는 어렵지만 83호 앞에 사람이 많이 모이니 스타는 당연 83호다.

몇 년 전, 필자는 고류사(광륜사-廣隆寺)의 일본 조각 1호 목조 반가사유상을 보러 물 건너갔다. 법당 중앙에 선 그는 좌우 여러 조각상을 호위무사로 두고 이방인을 반갑게 맞는다. 유리관도 보호막도 없다. 83호와 똑 닮은 목조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에 홀려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름다움이라 이런 것이구나’.... 신라의 적송으로 만들어졌다는데, 반가상의 국적에 대한 비애도 잠시 잊는다. 멍한 시선으로 오래도록 서성거렸다. 불상인 듯 사람인 듯 불가사의한 미소가 압권인 이 작품의 성적표는 반가사유상 통틀어 트리플 에이다.

종교를 떠나 자신을 알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것은 식자들의 보편적인 로망이다. 사람들이 산으로 강으로 나가는 이유다. 꽃피기 전, 요맘때, 생각이 목마를 때, 반가사유상을 만나러 간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은 필수코스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방’이라는 문구를 읊조리며 어두운 통로를 지난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무리를 이고, 고요한 방에서 두 반가사유상이 거룩한 미소로 가여운 중생을 보듬는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떤 강렬한 자아가 깨어난다. 벅찬 감동이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지고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멍하니 구석에 앉아 바라본다. 당신과 내가 하나가 되어 무아의 세계로 흐른다. 이때 보이는 것은 어제 본 그것과는 너무 달랐다./ 화가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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