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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바람에 고인된 강도근, 오정숙을 다시 만나다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바람에 바람을 싣다'
고 오정숙 명창, 아천 김영철 화백에게 받은 사슴이 그려진 두 개의 부채 중, 하나는 이일주 명창에게 , 또 하나는 김소영 명창에게 물려줘
이일주 명창에게 물려준 부채는 다시 제자인 장문희 명창(전북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에게 물려줘, 부채는 고 강암 송성용


기사 작성:  이종근 - 2022년 06월 29일 14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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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근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춤과 연희·무속 분야 명인·명창 58명의 부채 80여점을 통해 이들의 삶과 예술 세계를 살필 기회가 마련됐다.

국립국악원은 29일부터 오는 9월 25일까지 서울 서초구 국악박물관에서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기획 전시를 갖는다. 이 전시는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서로를 존경하고 아끼며 함께한 교유(交遊)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선풍기, 에어컨 등 냉방시설과 장치가 없던 시절 부채는 손과 한몸이 돼 더위를 식혀주는 고마운 물건이었다. 전통예술가에는 부채가 고마움 이상이다. 판소리뿐 아니라 한량춤, 부채산조, 부채춤과 같은 전통춤과 줄타기, 탈춤, 굿 등 연희에서도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게 부채로, 예술 동반자와 같은 소품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명인과 명창들은 부채 하나에도 예술에 대한 열정과 이상을 담았다. 부채에 새겨진 글과 그림이 접히고 펼쳐질 때마다 애절한 사연과 인생 이야기가 하늘거리며 퍼져나간다. 예술가들이 부채를 소중하게 간직하며 때론 사제 간 인연의 증표로 주고받는 이유다. 이렇게 부채에 담긴 글과 그림을 통해 명인·명창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이상을 엿볼 수 있다.





△이일주

전시명 ‘명인 명창의 부채, 바람에 바람을 싣다’의 붓글씨는 한글서예가로 유명한 소리꾼 장사익이 직접 써 그 의미를 더욱 빛냈다.

전북 출신 소리꾼들이 사용한 부채가 한 둘이 아니다. 고 오정숙 명창(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은 아천(雅泉) 김영철 화백에게 받은 사슴이 그려진 두 개의 부채 중, 하나는 이일주 명창(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에게 , 또 하나는 김소영 명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에게 물려주었다. 김소영의 부채는 사슴이 큰 모습이 인상적이며, 이일주의 부채는 먹의 깊이가 서로 다르다.





△김소영

이일주 명창에게 물려준 부채는 다시 제자인 장문희 명창(전북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에게 물려져 스승의 마음을 담은 소리는 부채를 통해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부채는 고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1913-1999)이 썼다. 고 강도근 명창(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의 부채는 1993년 가을에 제자 조영희가 준 부채로, 박창주가 썼다. '축국창강도근선생수산복해계유년중추(祝國唱姜道根先生壽山福海癸酉仲秋) 제자 조영희'로 적혀 있다.'수산복해(壽山福海)'는 수명은 산처럼 높고 복은 바다만큼 깊게(壽如山高 福似海深) 받으라는 뜻이다.





△모보경

유영애 명창(전북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의 심청가를 들은 청봉(靑峰) 유기원은 부채에 심청가의 눈대목인 '추월만정(秋月滿庭)'의 가사를 담아 선물했다.'추월은 만정허여 산호주렴의 비치어들제 청천(靑天)의 외기러기난 월하(月下)의 높이 떠서 뚜루루루루루 낄룩 울음을 울고 가니 심황후 반기 듣고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오느냐 저기럭아 소중랑(蘇中郞) 북해상(北海上)의 편지 전턴 기러기냐 도화동(桃花洞)을 가거들랑 불쌍허신 우리 부친전의 편지일장(便紙一張)을 전하여라'

'추월만정'은 심청가에서 가장 슬픈 대목이다. 가을 달빛이 뜰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심청이 가을 달밤에 귀뚜라미가 울고, 맑은 하늘에 기러기가 높이 떠 울음을 우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겨나서 편지를 쓰는 모습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모보경 명창(전북 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의 부채는 송하진 전북지사가 썼다. '취석산인 송하진(翠石散人 宋河珍)'으로 나오며, '유어애(遊於藝)'란 글귀를 썼다.‘유어예’란 공자의 논어 제 7편 술이(述而)에 나오는 말이다.(子曰志於道據於德依於仁遊於藝, 자왈, 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니라) 공자가 말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을 지키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서 노닐어야 한다”

이외의 전북 관련 예인의 작품으론 송재영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전북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을 비롯, 국수호, 김무철, 김소영, 김수연, 김영자, 김일구, 고 김조균, 박양덕, 안숙선, 왕기석, 장문희, 조소녀, 조통달, 주운숙, 채상묵, 최승희 등의 부채가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판소리 명창 채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서예가인 부친 오당 채원식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채를 전시에 내놨다. 오당은 부채 위에 ‘청풍명월본무가’(淸風明月本無價)라는 글귀를 적어 줬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본래 값이 없어 한 푼을 내지 않아도 무한히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소리를 많은 이에게 들려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한량무의 대가 고 임이조 명인의 부채도 전시된다. 명인이 춤추는 모습이 마치 학과 같다며 누군가가 ‘학무학’(鶴舞鶴)이라는 글귀를 적어 선물한 것이다. 남해안별신굿에서는 무당이 이상 세계를 담고 있는 부채를 들고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는 큰무당인 유선이 명인 때부터 100년 넘게 대물림된 부채를 제공했다. 신영희 명창은 소리 인생 70년간 사용한 부채 중 닳아 사용할 수 없는 24점을 모아 8폭 병풍에 담았다. 관련 특강도 오는 8월부터 마련된다.

서인화 국악연구실장은 “명인 명창들의 이야기와 바람이 담겨있는 그리고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소중한 부채를 전시를 위해 기증 또는 대여해 주신 모든 명인 명창이 있었기에 이번 전시가 가능했다”면서 “명인 명창의 이상과 예술에 임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예술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될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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