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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불청객이 되고야 마는 여자들을 본 적이 있는가?



기사 작성:  이종근 - 2022년 01월 19일 16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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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안온해 보이는 삶의 커튼을 들추고 그 아래 드리운 그늘을 들여다보는 신예 작가 위수정의 첫 소설집 '은의 세계(문학동네)'가 출간됐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무덤이 조금씩」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인생과 그 사이에 출몰하는 사랑의 숙명을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고통스럽지만 차분하게 그려낸다”(심사위원 구효서, 은희경)는 평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사 년 동안 부지런히 써온 여덟 편의 작품이 묶였다. 위수정 소설이 지닌 독특함은 표제작 '은의 세계'에서 두드러진다. ‘하나’와 ‘지환’ 부부는 팬데믹으로 처지가 어려워진 하나의 사촌동생 ‘명은’을 청소 도우미로 고용한다. 명은은 오빠 ‘경은’과 함께 하나의 부모에게 맡겨져 자랐는데, 하나는 자신과 그들이 마치 친남매 같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환은 하나가 명은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둘 발견할 때마다 그 이야기의 어딘가에 빈틈이 있다고 느낀다. 특히 경은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가 도둑질을 하다 도망치려던 중 추락한 것이라고 말하는 명은과 달리 그것이 친구의 집에서 일어난 사고였다고 말하는 하나를 보며 지환은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혼란스러워진다. 이러한 혼란은 「안개는 두 명」에서 ‘거짓말 게임’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유리’와 연인이라고도 친구라고도 하기 어려운 미묘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선주’는 오랜만에 옛친구 ‘화영’을 만나게 되고, 세 사람은 화영의 제안으로 거짓말 게임을 시작한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된다는 간단한 규칙의 게임이지만, 선주는 유리와 화영이 각각 이야기하는 자신의 모습이 온전한 거짓임을 믿을 수 없다. 이처럼 위수정의 인물들은 각자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하거나 숨겨야 할 것을 말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세계 안에 들어가기를 택한다. 그 세계 속에서 “거울은 너덜너덜”('안개는 두 명', 53쪽)하여 진실과 거짓말은 뒤섞인 채 구분할 수 없어진다.

'무덤이 조금씩'과 '마르케스를 잊어서'는 나아가 읽는 이마저 그 혼란 속으로 발을 들이게끔 한다. 「무덤이 조금씩」에서 ‘인영’과 ‘진욱’ 부부는 신혼여행중 찾은 무덤가에서 잠들었다가 사진작가 ‘헨리’가 그 모습을 촬영한 것을 계기로 그의 집에 초대받는다. 소설은 인영과 진욱, 그리고 헨리의 애인 ‘조슈아’의 시점을 오가며 그들의 저녁식사 자리를 담아내는데, 그때마다 사소하게는 음식맛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심지어는 인영과 진욱의 관계에 관한 내용까지 모든 진술이 제각기 엇갈림에 따라 독자는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어진다. 아이의 죽음 이후 이혼한 ‘준우’와 ‘홍’이 아이의 기일을 즈음해 떠난 여행을 그리는 '마르케스를 잊어서' 또한 서사를 매끄럽게 꿰맞추며 읽어나가려는 흐름에 균열을 냄으로써 읽는 내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해변가의 민박에서 권태로운 하루를 보내고 맞이한 다음날, 준우는 전날과 미묘하게 달라져 있는 풍경에 혼란을 느낀다. 더구나 그는 “아무 의심도 없이. 마치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던 기억을 꺼내보는 듯” 떠올렸던 아이에 관한 기억조차 사실은 “자신의 체험과 무관한 이야기”(187쪽)였다는 것을 깨닫는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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