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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창] 호남 천주교 정착의 역사를 담고있는 김제 수류성당

수류성당은 구한말 형성된 교우촌과 함께 고스란히 전해져온, 호남 천주교사의 보석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1년 01월 14일 14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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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연구사 백덕규



김제가 지니는 지역적 특수성 중에 하나는, 전국적으로 살펴보아도 유일무이 할 정도로 종교적 다양성이 집적화 되어있고, 다양한 종교적 성지가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정신문화사의 흐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표본으로서의 상징성을 지닌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자면, 불교와 미륵신앙의 성지 금산사는 물론이고, 근현대 신생종교이자 민족종교로서 특히 호남의 민중들과 함게했던 증산교의 성지인 증산법종교 본부와 초기 개신교의 성지로 끊임없이 방문객들이 찾아들고 있는 ‘금산교회’, 그리고 호남 천주교 정착의 역사와 발전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수류성당이 그것이다.

이 수류성당은 본래 1889년 장약슬(vermorel, 1888-1919)신부가 당시 금구의 행정구역에 속해있던 고산 배재(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설립한 배재 성당이 모태이며, 배재에 본당을 설립한 베르모렐 신부는 그 해에 세례를 주고 ‘수류공소’를 설립하면서 수류성당의 역사는 시작된다.

1895년 5월 공석인 배재본당에 라크루(Lacrouts, 1895-1929)신부가 부임 후 본당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본당 자리를 물색하여 면 소재지가 위치한 수류에 있던 이영삼 진사의 수류재실을 매입한 뒤 안채는 사제관으로, 행랑채는 임시 성당으로 개조하여 본당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수류에 성당이 마련되자, 그동안 제대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했던 각처의 신자들이 수류로 이주해 옴으로써 수류는 완전한 교우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수류는 지금도 교우촌 명맥을 유지해 마을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이다.

구마슬 신부에 이어 1900년 5월 제4대 주임으로 부임한 배가록(Peynet, 1900-1920)신부는 1906년 1월 라크루 신부가 확보한 대지 위에 성당신축공사에 착수하였다. 1907년에야 비로소 48칸의 목조 성당을 건축하였는데, 시골에서는 처음으로 웅대한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살린 건물이었다.

당시의 수류본당의 관할구역은 김제뿐만이 아니라, 부안, 정읍, 순창, 고창, 담양, 장성일대에 걸친 넓은 지역을 관할 할 정도였다.

특이할만한 사실은 수류본당에서 교육사업으로 1909년 3월 인명학교(仁明學校)를 설립하였는데 당시 학생수는 65명이었고, 교사는 3명으로, 1913년에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1918년에는 여학교도 개교하였으나 재정상태가 빈약하여 학교유지가 어려워짐에 따라 결국 1928년에 재인가를 받지 못하고 폐교하고 말았다.

1930년 초에는 4곳에 공소를 신설하였으며, 1935년 1월에는 김토마스와 최시몬이 율치공소에 야학을 설립하여 한글과 경문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 이렇게 교세가 급성장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던 수류성당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본당 신자 50여명이 사망하고,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했던 웅장하고 특이한 한옥구조이며, 목조로 된 수류성당마저 화재로 소실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당시 인민군들이 신자들을 성당안에 가둬놓고 불을 질러 목조로 된 수류성당은 전소되었으며, 신도 50여명이 희생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현재 남아있는 수류성당은 휴전 후 수류성당 신자들이 구호물자를 적립해 성당 신축 경비를 마련하여 건립한 것이며, 특히 신자들은 소실된 옛 성당처럼 목조건물을 짓지 않고 직접 냇가에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해와 벽돌을 만들어 성당을 지었기에, 수류성당이 위치한 마을주민들의 단합된 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여건 속에서 생각할 일이 아니다. 당시로서는 마을주민 거의 대부분이 농업인이였으며, 주민 40% 이상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수류성당 내부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며 어려운 삶 속에서조차 마을주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성당을 건립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12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교우촌으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수류성당은 동양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곳이며, 신부 18명, 수도자 17명을 배출하여 호남 천주교사를 대표하는 천주교 성지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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