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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컬럼] 허균의 ‘도문대작’, 익산 식품산업클러스트에서 되살려야

허균의 ‘도문대작’과 그 정신을 익산 식품산업클러스트에서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금상첨화이리라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12월 01일 14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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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1569~1618)이 조선의 음식에 대해 쓴 '도문대작'이란 책을 보면 1610년 전라도 함열(지금의 익산)로 귀양을 가게 된다. '쇄미록'의 저자인 오희문(吳希文)의 기록에서 보면 그가 임진왜란 중 피난과정에서 함열 인근 임천(林川) 친지 조존성(趙存性)에 3년간 우거하면서 함열현감인 신응구에게 장녀를 후취로 혼인시켰고, 이후 사위의 도움으로 다소 곤궁을 덜게 되었으며, 일가의 생활비를 함열관아에서 담당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함열현의 재정이 매우 풍족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순탄치 않은 관직생활 중 1611년 전라도 함열현으로 귀향갔던 때. 대단한 불만이 딱 하나 있었으니 음식이었다. “쌀겨조차 부족하고 밥상 위의 반찬이라곤 썩어 문드러진 뱀장어나 비린 생선에 쇠비름과 미나리뿐”이라고 투덜댔단다. 결국 ,주린 배를 달래고자 책을 한 권 집필하는데, 이름 하여 ‘도문대작’(屠門大嚼).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란 뜻이라니. 조선 최고의 그 ‘짧은 입’을 살살 녹였다는 음식을 ‘도문대작’에 공개한 바, 바로 ‘석이병’이다. 1603년 금강산 여행 중 맛보았다는 석이병의 주재료는 석이버섯을 다져 귀리를 빻은 가루에 섞고 꿀물을 탄 뒤 조물조물해 시루에 쪄낸 떡이다. 허균의 식도락은 가문이 만들었다. “선친이 살아계실 때는 사방에서 별미 음식을 예물로 보내는 이가 많아서 어린 시절 진귀한 음식을 두루 먹어 보았다” 다음과 같은 얘기도 전한다. “자라서는 부잣집에 장가가서 땅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음식을 다 맛보았다.” 얼마 뒤 허균은 유배지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다신 석이병을 맛볼 수 없게 됐으니. 광해군 10년(1618) 역모 혐의를 쓰고 서울 서소문 밖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하고 만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허균은 1610년 12월 함열로 귀양살이를 떠난다. 한겨울에 귀양길에 오른 그는이듬해인 1611년 1월15일 함열에 가 닿는다. 그런 중에도 허균은 딴짓을 했다.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먹는 타령이었다. '연어 알 젖 한 그릇을 받아 먹어보니, 맛이 사슴의 태(胎)보다도 뛰어났다. 구장(구약나물의 뿌리를 가루로 만들어 끓여서 만든 식료품)보다도 더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예컨대 벗 기윤헌에게 유배지 도착을 알리느라 쓴 짧은 편지를 보면, 도착했다는 말 빼고는 이 내용이 전부다. ‘새우도 부안 것만 못하고, 게도 벽제 것만 못해. 음식을 탐하는 사람으로서 굶어 죽을 판이야’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함열현감으로부터 연어알젓을 받아 잘만 먹어치우고 나서도 다음날 바로 먹을거리를 가지고 불평했다.

이는 1611년 1월에 허균이 함열현감에게 쓴 편지다. 함열현의 이웃 고을인 용안현감 이할도 유배를 온 허균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어 3월에 '용산(龍山, 용안의 옛 이름)의 원님 이할에게 보냄'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니 식지(食指, 집제손가락)가 움직이더니 문득 좋은 어물(魚物)의 선사를 받았습니다. 하필이면 바다의 용왕만 아름다운 맛을 낸다고 하던가요. 양강(襄江)의 축항(縮項)이란 고기나 서주(徐州)의 독미(禿尾)라는 고기가 모르긴 하지만 그 맛이 이에 대적이 될는지요. 실처럼 잘게 썰어 회(膾)를 쳤더니, 군침이 흐르더이다.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니 국수나 먹던 창자가 깜짝 놀라 천둥 소리를 냈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감히 아홉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습니까'

그는 이해 3월에는 '함산 원님에게 보냄'이라는 편지글로 썼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는 뱅어와 준치가 많이 난다고들 하기에 여기로 유배 오기 바랐습니다. 그런데 금년 봄에는 전혀 없으니 또한 제 운수가 사납습니다’ 제 아무리 여러 고을 현감들이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유배지에서의 삶은 쓸쓸하기만 했다. 그의 저술 ‘도문대작’을 앞에 두니 각박한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고픈 허균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정부가 익산에 232만㎡ 규모로 조성중인 식품산업 특화 산업단지인 ‘국가식품클러스터’에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기업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식품클러스터에 국내외 식품기업들이 몰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국과 가까운 입지 때문이다. 유럽기업의 경우, 자국에서 생산한 식품을 중국까지 배로 운반하려면 한 달 넘게 걸리는 반면 익산에서 생산해 군산항을 통해 내보내면 중국까지 하루면 닿을 수 있어 수송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시간 운송에 따른 신선도 저하도 막을 수 있다. 식품클러스터 입주업체들은 또 대형 냉동창고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어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 허균의 ‘도문대작’과 그 정신을 익산 식품산업클러스트에서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금상첨화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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