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온누리] 백골징포(白骨徵布)

기사 작성: 윤지용 객원논설위원 - 2016.01.21 17:21

조선 전기의 군역(병역) 제도는 양인개병(良人皆兵), 병농일치(兵農一致)였다. 14세부터 60세까지의 양인(농민) 남성들은 모두 군역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중기인 16세기부터는 ‘방군수포제(放軍收布制)’가 실시되었다. 군역의 당사자인 장정이 해마다 군포(軍布) 2필씩을 납부하면 군역을 면제받도록 한 제도였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삼정(전정, 군정, 환정)이 문란해져서 중하급 관리들의 비리와 횡포가 극심해졌다. 군포를 납부하지 못하고 도주한 사람의 이웃에게 대신 거두는 인징(隣徵), 친척들에게 거두는 족징(族徵), 14세가 안 된 어린 아이들까지 군적(軍籍)에 올려 군포를 거두는 황구첨정(黃口簽丁) 등 온갖 비리가 횡행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그 중 하나가 이른바 ‘백골징포(白骨徵布)’였다. 말 그대로 백골(죽은 사람)을 군적에 강제로 등록해놓고 군포를 거둔 것이다.

얼마 전에 병무청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남학생들에게 징병 신체검사 통지서를 발송했다고 한다. 현대판 백골징포인 셈이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남학생 140명 중 27명의 유가족들만 사망신고를 해서 주민등록상 사망 신고가 돼 있지 않은 113명 가운데 올해 징병 검사 대상자인 1997년생 92명에게 통지서를 발송했다는 것이 병무청 측의 해명이다.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변명이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수해, 화재나 그 밖의 재난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있는 경우 이를 조사한 관공서는 지체 없이 사망지의 시·읍·면의 장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당사자인 유족들의 사망신고가 없었더라도 당시 사건의 소관기관인 해양경찰청이나 국무조정실 등이 자체적으로 주민등록 담당관서에 통보하여 조치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어떤 유족들인가.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로 20개월이 넘도록 진상을 밝혀달라고 눈물로 애원하고 있는 부모들이다. 참사의 진상규명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자식의 주검조차 찾지 못한 이들도 있는데, 차마 어떻게 사망신고를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부모들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들 앞으로 온 징병검사 통지서를 받고 어떤 심정이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안 그래도 국가의 과실과 무능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가슴에 국가가 또 한 번 못질을 했다. 참 무례한 나라에 살고 있다./윤지용(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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