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지속 가능한 지역순환경제체제 구축

2부. 협동조합 선진지를 가다 <2> 협동조합의 뿌리 - 데잘뎅 금융협동조합

기사 작성: 임병식 기자 - 2012.12.16 22:26

<2>협동조합을 키운 데잘뎅 금융협동조합

#포항, 울산, 거제, 통영은 요즘 불황 한파에 떨고 있다. 군산지역도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철강산업과 조선산업이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철강산업단지 278개 입주 업체가운데 정상 가동 업체는 손가락을 헤아릴 정도다. 단지 내 입주 업체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2% 감소했고, 고용 인원도 213명 줄었다.

포스코는 자산매각,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며, 동부철강은 제1공장 폐쇄에 이어 전 직원 임금을 30% 깎았다. 현대중공업도 창사 40년 만에 첫 희망 퇴직을 받았다. 통영의 조선산업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의 올해 신규 선박 수주량은 2007년에 비해 6분의 1로 감소한 520만CGT로 뚝 떨어졌다. 삼호조선소는 이미 폐업했다.

21세기 조선소도 조만간 문을 닫는다. 자동차와 조선산업 비중이 높은 군산지역 또한 먹구름이다. 현대중공업에 이어 한국GM도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한국GM의 군살빼기는 군산경제에 직격탄이다. 노조가 반발하고 김완주 지사가 고용 유지를 부탁하며, 문재인 민주당 후보까지 고용 유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경기 침체에 따른 파고는 비껴가기 힘들 전망이다.

#일본의 간판 기업인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TDK 등 몰락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얻는다. 한때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던 이들 기업들은 공장을 축소하거나 폐쇄하고 있다. 올 들어 공장 폐쇄에 나선 일본 대기업은 10여개에 이른다. 인구 9만3,000여명의 지바현 모바라시는 연말까지 1,500명이 실직한다. 파나소닉과 도시바 공장 폐쇄에 따른 후폭풍이다.

기후현 미노가모시도 지난 10월 소니의 공장폐쇄 결정으로 침울하다. 인구 5만5,000명 중 2,400명이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소니의 급작스런 공장 폐쇄는 대량 실직을 예고하고 있다. 아키다현 니카호시에 입주한 TDK도 내년 3월까지 6개 공장을 닫는다. 하청 업체는 최근 400명을 해고했으며, 지역 고졸 예정자 취업률은 13.3%로 뚝 떨어졌다.

한때 이전 보조금을 지급하며 경쟁적으로 기업유치에 나서고, 이를 자축했던 한국과 일본 지방 도시들의 현주소다. 특정 대기업의 구조조정에 따라 지역경제가 춤을 추는 형국이다. 덩달아 관련 기업이 입주한 지역경제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더 이상 특정 기업에 매몰된 경제성장은 안 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속 가능한 대안 경제로써 협동조합이 주목 받는 이유다.

▲ 라발대학 구내에 설치된 데잘뎅 금고의 자동화 기기를 이 용하기 위해 줄을 선 대학생들.

앞서 언급했듯이 퀘벡에는 2,800개 협동조합(비금융권)이 활동 중이다. 종사자만 9만 2,000여명을 헤아린다. 세계적인 공연 예술의 대명사로 이름 높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도 일종의 협동조합이다. 퀘벡주에 둥지를 틀고 있다. 비금융권 협동조합의 경제 규모는 연간 115억 달러, 한화로 14조원대에 달한다.

무엇보다 농업과 임가공업에서 협동조합은 시장 지배력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주유소뿐 아니라 등산장비, 학생협동조합 등 각종 소비부문에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응급 구조활동에 나서는 노동자협동조합을 비롯해 보육, 장례, 문화예술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 경제와도 연대하고 있다.

퀘벡 협동조합을 말하면서 금융협동조합기업인 데잘뎅(Desjardins)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퀘벡 협동조합의 뿌리다. 자체적인 성과도 눈부시지만 다른 협동조합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설 협동조합에게 필요한 돈을 싼 이자로 수혈했다. 이윤보다는 사업성에 고려하는 데잘뎅의 협동조합 철학에 기반한 것이다.

퀘벡 구시가지 앞으로 세인트로렌스 강이 흐른다. 이 강은 캐나다와 미국 국경지대에 위치한 오대호(온타리호, 휴런호, 이리호, 미시간호, 슈피리어호)와 대서양을 잇는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토론토에서 시작된 강은 몬트리올, 퀘벡까지 무려 1,198㎞를 흐른다. 강 폭은 퀘벡에 도달해 10㎞로 줄지만 가장 넓은 곳은 114㎞에 달한다.

몬트리올에서 퀘벡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오른쪽으로 바다와 같은 세인트로렌스 강이 끊임없이 따라온다. 퀘벡 시민들은 이 강을 신성하게 여긴다. 강을 건너면 데잘뎅 기념관이 소재한 레비(Levis)다. 이곳에서 데잘뎅 신협이 시작됐다. 퀘벡협동조합연합회(CQCM)도 있다. 데잘뎅의 자산은 무려 1,901억 캐나다 달러(218조 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 기준 순이익도 전년보다 14.1% 증가한 15억8,200만 달러(1조8,170억 원)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당시 데잘뎅은 오히려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은행 건전성이나 안전성 면에서도 북미 대륙 최상위권이다. 북미 대륙 금융회사 가운데 두 번째다. 부실 채권 비율 역시 0.43%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 50개 가운데 18위로 꼽힌다. 이런 데잘뎅은 서민금고에서 출발했다. 1900년 초 돈 빌리기가 마땅치 않았던 프랑스계 주민들은 고리사채에 대항해 직접 은행을 만들자는데 합의했다. 한 사람당 5달러씩 출자금을 내고 금고 주인이 됐다. 가난한 농민들은 그마저도 매주 10센트씩 나눠냈다.

1907년 설립 후 기존 은행권이 외면한 농촌 등 소외 지역을 무대로 영업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8년 만에 132개 금고가 세워졌다. 데잘뎅은 예금과 적금, 대출 등 전통적인 금융업무 뿐 아니라 보험과 벤처캐피탈까지 다양한 금융업무를 취급한다. 올해 10월말 현재 조합원은 560만 명이다.

인구 800만명 퀘벡 주민 가운데 데잘뎅 조합원 아닌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퀘벡을 여행하다보면 곳곳에서 데잘뎅을 만난다. 본사가 위치한 몬트리얼은 물론 퀘벡시 올드타운, 라발대학 구내, 농촌지역까지 데잘뎅은 촘촘한 망을 형성하고 있다. 데잘뎅 기념관 관계자는 성공 요인으로 민주적 지배구조와 ‘1인 1표’의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들었다.

매년 열리는 연차 총회에는 1,300명의 조합원 대표들이 참석해 주민 의사를 대변한다. 투기성 금융상품 개발이나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는 대신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업에 투자하자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협동조합 설립이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데도 적극적이다. 이를 위해 별도의 연대기금을 조성해 놓고 있다.

퀘백 주정부는 협동조합 활성화 정책으로 데잘뎅의 지역기금 창설을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손 꼽았다. 퀘벡 주정부 클레망 과장은 "데잘뎅은 협동조합 정신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경제가 뿌리를 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업협동조합연맹인 라쿠페데레도 성공 사례다. 퀘벡주 농식품업계 1위, 고용 규모(1만여명)로는 다섯번째다.

매출은 5조원대로, 자회사까지 합치면 7조원대다. 시장 지배력은 압도적이다. 돼지고기 시장에서 1위, 닭고기는 2위다. 캐나다 최대 비료업체인 ‘올리멜’과 주유소 체인 ‘소닉’을 두고 있다. 농민 조합원들에게 비료와 농업용 석유를 값싸게 공급하자는 취지로 설립했다. 농기구와 농자재 및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소비자협동조합 위니마 매장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농민들은 주유소에서 필요한 농자재까지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다. 농민들로부터 비판받는 우리나라 농협과 대조된다. 이처럼 다양하고 창의적인 협동조합들을 기반으로 퀘벡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지역자금이 재투자되는 지역순환경제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퀘벡 주정부에 따르면 2004~2008년 협동조합 총자산은 30.6% 증가했다.

조합원과 고용도 각각 19.0%, 15.9% 늘었다. 퀘벡주 총생산에서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 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10%로 추정된다. 특정 대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지역경제가 좌우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춰볼 때 퀘벡의 협동조합이 부러운 이유다.

전북발전연구원 황영모 박사는 “지속가능한 지역순환경제체제를 구축하는 수단으로써 협동조합은 의미있는 실험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에 맞춰 자치단체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간 활발한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퀘벡(캐나다)=임병식 기자 montlin@sjbnews.com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태양의 서커스'는 1984년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에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공연을 본 사람만 1억 명이 넘는다. 전 세계 상설 공연장과 순회 공연 등으로 지난해 1조 원을 벌었다. 올해도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를 예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사라진 유랑극단 서커스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재창조한 원동력은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10명의 단원으로 시작했다. 당시 사양산업이었던 서커스에 새로운 옷을 입힌 주인공은 이 지역 출신 젊은 여성 무용가였다. 상설 공연장이 들어선 곳은 애초 석회석 채석장과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악취와 지하수 오염 때문에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몬트리올 시는 결국 쓰레기 매립을 중단했다.

이후 방치된 땅을 지역민들의 예술 공간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됐다. 이어 '서커스를 통해 지구와 인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한다'는 목표 아래 사회적 기업 '라 토후(La Tohu)'가 설립됐다. 필요한 돈은 노동연대기금을 통해 지원받았다. 메탄가스는 에너지로 전환해 지역 주민 1만 가구에 전기로 공급했다.

그리고 상설 공연장과 국립 서커스학교를 세웠다. 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업교육과 서커스를 가르쳤다. 당연히 일자리도 늘어났다. 관심 밖에 있던 서커스와 쓰레기 매립장이 지역주민의 아이디어와 지방정부, 그리고 시민사회의 협동에 힘입어 세계적인 공연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사회적 가치실현과 일자리 창출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퀘벡(캐나다)=임병식 기자 montlin@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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