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전라북도 여성정책의 위상?"

기사 작성: 김혜경 - 2010.05.16 18:13

가치의 다원화와 개인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고용불안정 등의 상황은 이념적 경향이 강한 사회운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운동과 여성학이 그러한 사례로 꼽힌다. 특히 ‘골드미스’ 등으로 대변되는 일부 고학력여성의 성취는 성평등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에 달린 사안으로 왜곡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대학에서 여성학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주의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은 여전히 상당히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사회발전에 긴요한 가치로 이해되며, 특히 이혼율의 상승 등 가족문제가 부상하는 상황 속에서 공존의 삶을 모색하는 남학생들에게 여성학과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미래의 삶의 기획에서 중요한 성찰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미 앤소니 기든스나 울리히 벡 등 유럽의 사회학자들은 후기근대가 성찰적인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젠더관계가 핵심적 사유대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밝혀왔다. 남성 부양자규범의 재구성, 관계와 소통이 중시되는 친밀성 등이 이들이 제기하는 핵심적인 주장들이다.

인구의 절반의 경험에 대해 무지하거나 그것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사회정책은 장기적으로는 절반의 성공(실패)을 가져오기가 쉽다. 성인지정책의 필요성이 대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필자는 지역의 여성정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연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전라북도의 여성정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소견을 밝히기에는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된다. 다만 최근 자문위원의 자격으로 전북발전연구원을 몇 차례 방문하면서 느낀 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전라북도에서 여성관련 정책연구의 기능을 총괄하는 기구는 전북발전연구원의 여성정책연구소가 될 것이다. 홈페이지에 나타난 기구표를 참조해 보면 그것은 지역발전정책연구소와 여성정책연구소의 두 연구소로 구성되어있다. 조직표 상으로는 지역발전과 여성연구가 대등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작 건물 2층에 들어서면 한 귀퉁이에 있는 여성정책연구소의 모양새는 왜 그리 초라하던지 마치 작은 사설연구소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었다. 세 번을 방문할 동안 소장을 제외하고는 연구소에 다른 사람은 눈에 띄이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였는데, 연구를 지원할 행정인력이 부족한 탓인지 과분하게도 우리는 소장이 직접 준비해주는 차를 얻어마셔야 했다. 당연히 연구사업에 필요한 재정은 더더욱 궁핍한 듯 했다. 벌써 7, 8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필자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구 한국여성개발원)에 재직할 때 전라북도여성정책연구원과 공동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활기찬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근 가까운 전남지역에서 창립 1주년 기념행사를 치룬 ‘전남여성플라자’의 소식이 ‘여성신문’에 소개되었길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았다. 취업관련 교육은 물론, 상시적인 여성ㆍ가족관련 영화제, 여성주의 교육강좌, 소비자와 생산자가 만나는 살림마당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책연구, 다양한 교육제공, 취업지원, 가족ㆍ여성의 소통공간 등이 통합된 모습이었다. 내가 본 전북지역의 사례와 너무 대조가 되어 의아스럽게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어찌 보면 오늘의 전북여성정책 전문연구기관이 갖는 취약한 위상은 이미 5년 전 전북여성정책연구원이 전북발전연구원과 통합될 때 제기되었던 우려가 그대로 현실화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4년 전 5·31지방선거에서 당시 전북여성단체연합이 내건 13개 제안 중 첫 번째였던 사항이 바로 연구기능 확충 등의 ‘여성정책 추진체계의 기반구축’이었음을 상기할 때, 오늘의 과제는 어제의 과제의 복사판이 되지 않으려나 상상해본다.

/김혜경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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