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전기수와 낭독

기사 작성: 최기재 - 2010.03.08 15:37

이경화의 장편소설 <꾼>은 전기수(傳奇叟)이야기다. 강독사(講讀師), 강창사라고도 하는 전기수는 예전에 이야기책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사람을 말한다. 주로 소설을 직업적으로 낭독하던 사람으로 흥미로운 대목에서 소리를 멈추고 이때 청중이 돈을 던져 주면 다시 낭독했다. 영화화 된 소설『책 읽어주는 남자』나 『책 읽어주는 여자』는 조선시대의 책 읽어주는 전기수인 셈이다.

소설 속의 전기수는 이야기로 사람들과 소통을 꿈꾼다. 신분을 초월한 소통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 소통은 곧 인간적인 교감이며, 이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조수삼의 <추제집>의 <전기수> 항목에 기록이 전한다. 전기수는 동대문 밖에 살고 있으면서 「숙향전」·「소대성전」·「심청전」·「설인귀전」같은 소설들을 잘 읽었다. 워낙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청중들이 겹겹이 담을 쌓는다. 그는 읽다가 가장 간절하여 매우 들을 만한 대목에 이르러 문득 읽기를 멈춘다. 청중은 하회가 궁금해서 다투어 돈을 던진다. 이것을 일컬어 요전법(邀錢法)이라 한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도강록 관제묘기’에는 중국의 구요동성 문 밖에서「수호전」을 읽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사람이 뺑 둘러 앉아서 듣고 있는데 머리를 흔들고 코를 발름거리는 꼴이 거만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가 펼쳐 놓은 곳을 보니 ‘화소와관사’ 대목인데, 낭송하는 것은 「서상기」였다.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이지만 입만은 청산유수다. 마치 우리나라 골목길이나 장바닥에서 「임장군전」을 낭송하는 것과 같았다. 이를 보면 중국에도 전기수가 대단한 관심거리였나 보다.

그런데 전기수의 이야기는 죽음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덕무의 『아정유고』‘은애전(銀愛傳)’에는 옛날에 한 남자가 종로의 담배 가게에서 어떤 사람이 패사 읽는 것을 듣다가 영웅이 가장 실의(失意)하는 대목에 이르자,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고서는 담배 써는 칼로 패사 읽는 사람을 찔러 죽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다른 기록에는 죽음을 당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상놈이 십여 세부터 눈썹을 그리고, 화장을 하고 여자들이 쓰는 언서체를 익혔다. 그는 패설을 잘 읽었는데, 그 음성이 여자와 같았다. 홀연 자취를 감추었는데, 나중에 보니 여장(女裝)을 하고 사부가(士夫家)에 출입하면서 혹 진맥을 하기도 하고, 혹 방물장수 노릇도 하고, 혹 패설을 읽어 주기도 하였다. 또 여승과 결탁하여 불공과 기도를 드려주기도 하였는데, 그 때 간음을 하기도 하였다. 판서 장붕익(張鵬翼)이 이를 알고, 입을 막으려고 그를 죽여버렸다. 그것은 그가 입을 열면 난처한 일이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전기수의 낭독은 이렇듯 듣는 이들의 가슴을 움직이고 죽음을 불러왔다. 옛날부터 읽기는 소리내어 읽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리스어의 ‘읽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는 ‘낭독자 또는 낭독자의 소리가 도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읽기’의 속성은 중세를 지나 근대 가까이 읽는다는 행위는 낭독을 뜻했다. 서양에서는 묵독을 하는 경우 불경한 내용을 읽는 것으로 치부하기까지 하여 중세에까지 낭독을 하였다.

책 읽는 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다. 초등학생들조차 책을 눈으로 읽는다. 낭독은 우리 가슴을 울리는 소리이며, 낭독은 책 읽는 이를 책 속에 몰두하게 한다. 책 읽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행복한 나라가 되길 꿈꾸어 본다.

/최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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