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아파트 30억 시대! 주거인가? 신분인가?

삶을 담는 그릇인가 신분을 증명하는 훈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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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대한민국 주거의 명함

집은 인간이 비바람을 피하는 공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시설을 넘어 부와 권력, 계층과 욕망을 상징하는 사회적 기호가 되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누군가는 30억 원짜리 아파트에 살고, 누군가는 평생 노동해도 작은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삶을 담는 그릇인가, 인간의 신분을 증명하는 훈장증인가?

사회학적으로 주거는 계층을 재생산하는 핵심 장치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설명한 경제자본과 사회자본, 문화자본은 오늘날 한국의 아파트에서 교차한다. 어느 지역에 거주하는가에 따라 교육환경과 인간관계, 사회적 기회가 달라진다. 주소가 개인의 능력을 설명하지 않음에도 특정 지역의 거주 사실만으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추정한다. 과거에는 가문과 관직이 신분을 구분했다면, 오늘날에는 아파트의 위치와 가격이 새로운 계층의 표지가 되는 셈이다.

문화학적으로 아파트는 현대 한국인의 집단적 욕망이 투영된 상징물이다. 고급 아파트의 외관과 조경, 커뮤니티 시설, 브랜드는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차별화된 생활양식을 판매한다. 아파트 브랜드는 소비자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적 언어가 되었고, 단지의 문은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상징적 경계로 기능한다. 문제는 주거의 품질을 높이는 경쟁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까지 주택 가격으로 평가하려는 태도다. 집의 가격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순간, 주거문화는 신분문화로 변질된다.

경제학적으로 30억 원 아파트는 노동소득과 자산소득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연봉 1억 원을 받는 근로자가 세금과 생활비를 한 푼도 지출하지 않고 30년을 모아야 도달하는 금액이 30억 원이다. 현실에서는 세금과 소비, 주택가격 변동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격차는 더욱 복잡해진다. 부동산 자산의 상승이 노동의 보상을 지속적으로 앞지르는 사회에서는 성실한 노동만으로 계층 이동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물론 고가 아파트의 존재 자체가 부정의는 아니다. 희소한 입지와 교통, 교육환경, 건축 품질은 높은 가격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토지의 희소성과 공공투자가 만들어 낸 가치가 누구에게 얼마나 귀속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시장가격을 존중하는 것과 자산격차가 기회의 불평등으로 고착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결코 같은 일이 아니다.

인지심리학적으로 아파트는 인간의 비교본능을 자극한다. 사람은 절대적인 생활수준뿐 아니라 타인과의 상대적 위치를 통해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판단한다. 이를 사회적 비교라고 한다. 10억 원 아파트에 살아도 주변이 모두 30억 원 아파트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작은 집에서도 안정적인 관계와 삶의 자율성을 누리는 사람은 높은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다. 행복의 기준이 주거의 기능에서 타인보다 우월한 주소로 이동하면, 자산이 증가해도 만족은 끝없이 유예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비교가 다음 세대의 가치관으로 전승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친구의 인격보다 거주 아파트를 먼저 묻고, 청년들이 직업적 성취보다 부모의 부동산 자산으로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다면, 사회적 신뢰와 도전정신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주거격차가 곧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바뀌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고가 아파트를 적대시하는 정책이 아니다. 양질의 주택 공급과 교통망 확충, 교육기회의 균형, 안정적인 임대주거, 예측 가능한 조세제도를 통해 주소가 삶의 기회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동시에 부동산 가격 상승보다 생산적 투자와 혁신, 노동의 성취가 존중받는 경제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아파트 30억 원 시대의 진정한 위기는 집값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집을 소유한 사람이 존중받고,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 열등하다고 느끼게 되는 사회적 인식이 더 깊은 위기다.

문명은 높은 건물을 세우는 기술로 발전하지만, 사회의 품격은 그 건물 밖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는가로 결정된다.

집은 인간의 신분증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회복해야 할 것은 부동산 가격의 서열이 아니라 인간 존중부터 챙겨야 할 품성이 먼저다./배문철 (시인, 평론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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