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현봉 최수일 서각 작가가 다음달 4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경인미술관 제2관에서 열두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에는 대작 100호부터 소품 4호에 이르기까지 현대서각 작품 44점이 출품된다. 작가의 고희를 맞아 마련된 자리로,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서각예술의 의미와 자신의 예술 세계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뜻깊은 전시다.
전시는 글자와 조형, 그리고 색채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돌아보고자 하는 작가의 오랜 예술적 고뇌와 탐구의 결과물을 담아냈다.
서예에서 출발, 서각, 문인화, 서양화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대중화와 현대화를 이끌어 온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한층 더 깊어지고 정제된 시각 언어를 선보인다.
이 전시의 핵심 작품 세계는 ‘전통적 소재의 과감한 현대적 변용’과 ‘입체적 조형미’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서각은 글자나 형상을 나무에 단순히 새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고기·새·항아리 등 전통적 상징을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서 해체하고 재조립한 '현대적 조형 예술'이다.
작가는 이른 새벽, 마른 방 안으로 번지는 푸르스름한 빛을 따라 거실 벽에 걸린 소나무 판재 앞에 섰다. 나뭇결의 굴곡을 따라 거칠게, 때로는 애틋하게 파고든 서각 작품.
오래 전, 그늘진 마음을 달래려 칼을 쥐고 새겼던 그 글귀들이, 오늘따라 저물지 않은 새벽달처럼 시린 빛을 발하며 가슴을 두드렸다.
서각은 살아있던 것의 살결 위에 내 마음의 그림자를 투영하는 기다림의 일기이다.
수십 년의 바람과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냈을 단단한 나무는, 베어지고 말려진 뒤에도 제 안의 고집스러운 향을 품고 있다. 처음 먹을 적신 붓글씨 종이를 나무 위에 붙이고 칼끝을 대었을 때, 손끝으로 전해지던 나무의 나직한 거부감을 기억합니다. 서투르고 조급했던 나의 감정은 나무의 단단한 결에 부딪혀 번번이 미끄러지고, 때로는 마른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가곤 했다.
작품엔《물고기의 즐거움》, 《굳세어라 금순아》, 《푸른 옷을 걸친 여행자》 등 유독 물고기와 새가 자주 등장한다.
전통 미술에서 물고기가 가진 ‘풍요와 자유, 유유자적함’의 의미를 빌려와 현대인의 삶과 염원을 투영한다. 달항아리, 한복(저고리), 사슴 등 한국적인 정서가 짙은 소재를 단순하고 세련된 현대적 기호로 재해석한다.
나무판을 파내고 깎아낸 흔적(칼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거친 마티에르(질감)와 깊이감 있는 음각·양각의 조화가 작품에 강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물고기(2023)》나 《물고기의 즐거움(2020)》처럼 하나의 판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거나(분할), 아예 엮어서 매다는 방식(오브제·모빌 형태)을 취한다.
이는 고정된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서각의 현대적 시도이다.
작품 전반에 은은한 푸른빛과 민트색, 황토색이 감돈다. 전통 오방색의 원색 느낌을 빼고 담백하고 차분한 톤으로 마감, 서정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를 준다.
2025년 작품 《물빛 풍어》는 전통 서각의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입체 예술을 완성한 대표작이다.
그는 사각 프레임이나 목판 형태의 평면을 완전히 벗어났다.
각각 따로 조각한 물고기들을 새끼줄로 엮어 공중에 매다는 설치 미술(모빌) 형태를 취해 자유로운 조형성을 강조했다.
투박하게 깎아낸 물고기의 표면과 둥글고 장난기 넘치는 눈매, 질박한 무채색 톤은 우리 전통 민화나 분청사기 속 물고기처럼 해학적이면서도 정겨운 멋을 풍긴다.
제목의 '풍어(豐漁)'라는 말처럼, 줄줄이 엮여 올라오는 물고기 무리를 통해 삶의 풍요로움과 만선의 기쁨, 그리고 현대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주술적이고 따뜻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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