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실무 지침서 '은대편고' 8년 한글로 완역

임실출신 이강욱, `은대조례'와 `교점역해 정원고사'에 이어, 8년 동안의 작업 끝에 `교점역주 은대편고' 발간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의 업무 규정과 행정 관행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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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의 업무 규정과 행정 관행을 집대성한 『은대편고』가 8년에 걸친 번역 작업 끝에 출간됐다. 왕명 전달부터 인사·재정·의례·외교·군사·사법·과거시험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중앙정부가 실제로 움직인 절차와 선례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자료다.

태학사는 『교점역주 은대편고』와 『은대편고 어휘사전』으로 구성된 전 2권 세트를 15일 발행한다고 밝혔다. 『교점역주 은대편고』는 1488쪽, 『은대편고 어휘사전』은 39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번 출간은 단순히 한 권의 고전 문헌을 번역한 데 그치지 않는다. 2001년 『승정원일기』 정보화 사업을 계기로 시작된 연구와 강독, 번역의 축적이 25년 만에 하나의 결실을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은대(銀臺)’는 조선시대 승정원을 일컫는 별칭이다. 승정원은 여섯 승지가 국왕의 명령을 출납하고 각 관청과 신하들이 올린 문서를 처리했으며, 국왕과 신하의 접견을 주선하고 그 대화 내용을 기록하던 기관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승정원일기』도 이들의 일상 업무에서 탄생했다.

막중한 국정 업무를 일관되게 처리하기 위해 승정원에는 업무 지침과 선례가 필요했다. 『정원고사』, 『은대편고』, 『은대조례』는 이러한 승정원의 주요 업무 지침서다.

이번에 번역된 『은대편고』는 헌종 연간에 편찬된 문헌으로, 세 자료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구체적인 실무 편람으로 평가된다. 승정원의 육방 체제에 따라 이방고·호방고·예방고·병방고·형방고·공방고로 나눠 업무를 정리했고, 특정 승지방에 속하지 않는 공통 업무는 별도의 ‘통고’에 담았다.

단순히 업무 규정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업무가 어떤 절차를 거쳐 진행됐는지, 과거에는 어떻게 처리됐는지, 상황 변화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보여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완역의 출발점은 2018년이었다. 대표 저자인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는 머리말에서 자신과 승정원 업무 지침서의 인연이 200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 정보화 사업 참여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임실 출신인 이명예교수는 스물세 살이던 1983년 11월, 부산의 한 냉장고 부품 공장에서 유압 프레스 사고로 두 손을 잃었다. 취업은커녕 혼자 밥을 먹는 일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갈고리형 의수에 펜과 붓을 끼우고 밤낮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에 붙고 공인노무사 1차도 통과했지만, 여러 장의 답안을 손으로 써내야 하는 2차 앞에서 멈춰 섰다. 그때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다 죽자"고 결심한 뒤 그가 매진했던 공부는 한문과 역사였다. 전주의 서당에서 5년 동안 사서삼경과 <고문진보>, <통감절요>를 읽었다. 검정고시와 독학사를 거쳐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을 마쳤고, 1998년 민족문화추진회(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 국역위원 시험에 합격해 <홍재전서>와 <일성록> 번역을 맡았다. 사고 뒤 15년 만에 얻은 첫 일터였다.

이 명예교수와 승정원과의 인연은 2001년에 시작됐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그해부터 15년에 걸쳐 벌인 <승정원일기> 정보화사업에 초기 팀장으로 참여해 원문에 표점을 찍고 기사마다 제목을 다는 일을 했다. 일기를 구석구석 읽은 것이 그때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임금과 신하의 말이 생생하게 담긴 이 일기를 "거의 '왕궁신문' 수준"이라고 했다. 동료 연구자들과 <은대조례>를 함께 읽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마지막 과제인 『은대편고』는 앞선 두 문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명예교수는 『은대편고』가 앞선 두 문헌보다 분량이 10배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이어서 쉽게 착수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결국 2018년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산하 조선시대법전강독회에서 본격적인 강독과 번역이 시작되면서 8년에 걸친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번역 작업에는 모두 27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5개 팀으로 나눠 이윤희 선생이 이방고·호방고, 조경임 선생이 예방고, 추소령 선생이 병방고, 이상설 선생이 형방고·공방고를 각각 맡았다. 이명예교수는 예방고와 병방고의 과시(科試), 그리고 통고 부분을 담당하면서 각 팀의 자문과 교열도 병행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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