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최근 남원시 왕정동 일대에서 조선 전기 왕실 공납용 백자를 생산했던 대규모 가마터가 발굴되면서 학계와 지역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가마 11기와 폐기장 6기 등은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관요(官窯) 설치 이전의 백자 생산체계를 규명할 결정적 열쇠다. 특히 지방 가마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최고급 자기를 굽던 '갑번요(匣燔窯)' 구조가 확인되고, 김종직의 문헌 기록인 <점필재집>의 실체가 증명됐다는 점에서 고고학적 가치는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다.
국가적 보물급 유적이 발견된 만큼, 이제는 행정당국이 전폭적인 예산 확보와 구체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매장문화재 발굴 현장의 비극은 언제나 학술적 환호가 떠나간 직후, 행정의 무관심과 예산 부족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유적이라 하더라도 당국의 신속한 재정적 결단과 정책적 뒷받침이 따르지 않으면 비바람 속에 방치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현재 왕정동 도요지 현장은 반지하식 가마 구조와 당시의 갑발, 도지미 등이 정연하게 드러나 있어 훼손 위험에 극도로 취약한 상태다. 남원시와 전북특별자치도, 그리고 국가유산청이 예산 타령만 하며 후속 조치를 미룬다면 이는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정부와 지자체는 생색내기용 학술조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연속성 있는 예산 편성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첫째, 추가 정밀 발굴과 가마터 전수 조사를 위한 '학술조사 특수목적 예산'을 차기 재정 계획에 최우선 순위로 반영해야 한다. 이미 가마터 11기가 확인된 만큼, 주변 복음산 사면 일대에 대한 전면적인 정밀 조사가 끊김 없이 이루어지도록 안정적인 재원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둘째, 발굴된 가마 유구의 불가역적 훼손을 막기 위해 긴급 보호 돔 설치 및 현장 보존을 위한 긴급 예산을 즉각 투입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제도적인 속도전도 필수적이다. 행정당국은 국가 지정 문화유산(사적) 승격을 위한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국비 확보를 위한 심사 절차를 선제적으로 밟아나가야 한다. 유적지가 인근 사적 만복사지와 연계되어 있는 만큼, 일대를 묶어 대규모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광역 행정의 묘수가 필요하다. 단순한 관리 방안 모색이라는 구두선(口頭禪)에 머물지 말고, 부지 매입과 디지털 복원, 향후 도자문화관 건립까지 내다본 중장기 재정 로드맵이 실현되어야 유적의 온전한 보존이 가능하다.
역사적 발견을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완성하는 것은 결국 행정의 의지와 자금의 뒷받침이다. 땅속에서 580여 년을 버텨온 조선 도공들의 숨결이 예산 부족이라는 황당한 걸림돌에 걸려 다시 묻히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지자체와 문화재 당국은 이번 왕정동 도요지 발굴을 지역 행정 역량의 시험대로 삼고, 아낌없는 재정적 투자와 압도적인 지원을 통해 문화 강국·문화 도시의 품격을 증명해 보이길 바란다.
[사설] 남원 왕정동 도요지 발굴, 후속 작업으로 이어져야
행정 당국의 과감한 예산 투자 제도적 지원이 성패 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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