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를 성리학의 나라로 기억한다. 학문의 기준이 분명했고, 그 울타리를 벗어난 생각과 이념은 쉽게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정해진 학문의 경계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탐구한 선비가 있었다. 정읍시가 2026년 10월의 역사문화인물로 선정한 청하(靑霞) 권극중(權克中, 1585~1659)이 바로 그런 학자다.
권극중은 지금의 정읍시 이평면 팔선리에서 태어났다. 김장생의 문인 최명룡에게 학문을 배웠고, 김장생에게도 가르침을 받았다. 1612년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에서 공부했으나 인목대비 폐비론이 제기되자 낙향했다. 이후 학문에 몰두하며 자신만의 사상적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의 학문적 성취는 대표 저술인 ‘주역참동계주해’에 집약돼 있다. 중국의 도교 경전인 ‘주역참동계’를 해석하면서 성리학의 우주관을 접목해 인간의 몸과 마음,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고자 했다. 기존 학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다양한 문헌을 검토하고 자신의 논리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을 구하고 읽으며, 서로 다른 학설을 비교하고 오랜 사색을 거쳐야 했다. 권극중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학문적 세계를 넓혀갔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의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접한다. 인공지능은 복잡한 질문에도 순식간에 답을 내놓고 방대한 자료를 요약해 준다. 과거에는 평생을 바쳐야 얻을 수 있었던 지식에 이제는 몇 번의 검색과 질문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정보에 접근하기 쉬워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지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무엇이 사실이고 가치 있는 지식인지 판단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답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그 근거를 확인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얻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실천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환경문제를 공부했다면 생활 속 작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배웠다면 이웃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지식이 머릿속에 머물지 않고 삶을 변화시킬 때 비로소 배움의 의미가 완성된다.
권극중이 남긴 유산도 단순히 오래된 학설이나 저술에만 있지 않다. 익숙한 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으려 했던 학문적 태도에 있다.
400여 년이 흐른 오늘, 지식을 얻는 방법은 놀랍도록 달라졌다. 그러나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판단하며, 그것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읍의 옛 선비 권극중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우리는 지금 지식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그 지식으로 삶을 바꾸고 있는가.
오승옥(문화활동가·관광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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