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열심히 노력해 실력을 갖춘 사람이 성공하고, 그 보상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공정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의 신화다. 세습과 신분이 출세를 결정하던 과거나 불공정한 특혜에 비하면 능력주의는 꽤 정의롭고 진보적인 신념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이 무결해 보이는 이상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시험 점수와 시장 가치만으로 인간의 성패를 가르는 지금의 능력주의는 과연 진짜 공정한가.
미국에서 진행된 한 보드게임 실험은 뼈아픈 시사점을 던진다. 동전 던지기로 처음부터 두 배의 자금과 주사위를 부여받은 특혜 플레이어는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승자들은 자신이 누린 '동전 던지기의 운'은 까맣게 잊은 채, "부동산 구매 타이밍을 잘 잡았다", "전략이 훌륭했다"라며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다. 자신에게 작용한 환경의 운을 오롯이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착각한 것이다.
샌델 교수가 지적하듯, 능력주의의 가장 치명적인 독소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모욕'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가난의 원인을 불평등한 시스템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외치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실패는 오롯이 '개인의 무능과 게으름' 탓이 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냉혹한 말 속에서 패자의 인간적 존엄성은 깊은 상처를 입는다.
우리가 자랑하는 '내 능력'의 상당 부분은 사실 타고난 재능, 부모의 배경, 시대적 행운이라는 '운'의 산물이다. 세계적 축구 스타 메시가 축구에 열광하지 않는 중세에 태어났다면 수천억 원의 몸값을 받는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고소득층 자녀가 명문대에 압도적 비율로 진학하는 현실에서 학벌을 신분증표 삼아 당당함을 내세우는 정치·사회 엘리트들의 오만은 대중의 깊은 불신과 정치적 포퓰리즘을 불렀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사회를 실제로 지탱한 이들은 고액 연봉의 엘리트가 아닌 배달 노동자, 환경미화원, 돌봄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팬데믹이 지나간 지금, 필수 노동에 대한 처우와 사회적 대우는 제자리다. 능력주의가 사회적 기여를 오직 '시장의 몸값'으로만 매기며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린 결과다.
이제 능력주의의 독선을 내려놓고 성공 뒤에 작용한 '운'을 인정하는 '성공의 겸손함'을 회복해야 한다. 내가 누리는 성취가 타인의 노고와 사회적 기여 덕분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일의 존엄성이 살아나고, 승자와 패자로 갈라진 공동체의 연대가 시작된다. 승자에게만 빛을 몰아주고 패자를 그늘에 방치하는 차가운 능력주의를 넘어, 그늘진 이들의 손을 잡는 '연대의 공정'으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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