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여름이 없는 여름(시 문신, 그림 도원, 펴낸 곳 상상)'은 여름이 없는 여름’은 ‘빈둥고래’라는 낯선 이름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시인이 어린 시절 기억과 상상 속에서 마주했을 어떤 존재에게 직접 붙인 이름이다. 이처럼 보지 못했던 것에, 들리지 않던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문신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그의 상상력은 곧 미약한 존재들의 말소리를 듣는 귀가 된다. 다 찌그러진 깡통에서 “깡깡깡깡” 울리는 소리를 듣고(‘깡통은 깡통이다’), “세 시에는” 학원에 가는 게 아니라 “춤을 추고 싶”은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세 시에는 춤을’).
낯선 것을 마주 보고, 낮은 존재들의 소리를 듣는 시인의 시선은 어린이와 가족 주변의 일상을 넘어 더 넓은 세계로 향한다. “오늘도 수백 개의 폭탄이 터”지는 “가자 지구”(‘노을’), 난민들이 모이는 “모리아 캠프”까지(‘먼지의 집’), 시인의 시선은 점점 더 사회적인 곳까지 넓어진다.
낯선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고, 미약한 존재들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여름이 없는 여름’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계를 환하게 밝혀 우리에게 보여 준다.
시인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들리지 않던 것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 “빈둥고래”도(「빈둥고래 형제」), “납작코 삼촌”도(「납작코 삼촌」), 모두 시인의 시선 안에서 새로워진 존재들에 붙은 이름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가 일상적인 시선과 언어로 포착하지 못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게 한다. 시인이 붙이는 이름은 세계의 한쪽에 숨어 있는 모습을 문득 드러나게 한다.
시집의 또 다른 곳에서는 미약한 존재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세 시에는” 학원에 가는 게 아니라 “춤을 추고 싶다”는 말은(「세 시에는 춤을」), 시인의 다정함이 포착하는 아이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다. 나아가 아무리 찌그러져도 풀 죽지 않는 깡통이 “깡깡깡깡” 소리를 낼 때(「깡통은 깡통이다」), 시인이 만들어 내는 비유는 존재와 존재 사이를 이어 주는 상상의 통로가 된다.
이와 같은 시인의 다정한 마음은 곧 ‘납작코 삼촌’으로 집약된다. 전쟁터의 소녀를 구하다 콧등이 납작해진 그는(「납작코 삼촌」), 낡고 닳고 헐고 고장 난 그림자만 산다고 말한다(「헌 그림자 사요」). 전쟁으로 상처 입은 그는, 자신처럼 세상이 쓸모없다고 취급하는 존재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간다. 그에게 ‘납작함’은 결핍이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태도다. 그 태도는 곧 상처 입은 존재, 버려진 존재, 말없이 살아가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넓은 귀가 된다.
시인의 시선은 어린이와 가족 주변의 일상을 넘어 더 넓은 세계로 향한다. “고공 농성”을 이어 가는 “아저씨들”부터(「겨울, 느티나무 꼭대기에는」), “오늘도 수백 개의 폭탄이 터”지는 “가자 지구”(「노을」), 난민들이 모이는 “모리아 캠프”까지(「먼지의 집」), 시인의 시선은 점점 더 사회적인 곳까지 넓어진다.
이러한 시인의 시선은 곧 ‘여름이’라는 한 아이에게 닿는다. 여름이는 피부색과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아이다(「젠가 게임」). 결국 여름이는 떠나고, “여름 들판에 여름이가 사라”진다(「여름이 없는 여름」). 문신 시인은 한 아이의 부재를 계절 전체의 빈자리로 확대하면서,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담아낸다.
보이지 않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들리지 않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시. 『여름이 없는 여름』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계를 향해 다시 눈과 귀를 열게 하는 동시집이다.
지은이는 여수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며 자랐습니다. 2004년 세계일보와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시를 써 오다가 세 아이의 아빠가 된 후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여러 장르에서 글쓰기를 해 오고 있다. 시집 『물가죽 북』 『곁을 주는 일』 『죄를 짓고 싶은 저녁』과 동시집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 장편동화 『그림자 사냥꾼』 『롱브릿지 숲의 비밀』, 문학평론집 『서로의 표정이라서』 등을 냈다./이종근기자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