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아침이슬을 가만히 털어 내며 대문 밖을 나섰을 때, 우체통 투입구 틈새로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붉게 물든 단풍잎 한 장이었다. 바람이라는 이름의 우체부가 밤새 들러 조용히 밀어 넣었을 그 다정한 사연. 가을의 인장(印章)처럼 또렷하게 찍힌 낙엽 한 장을 받아든 순간, 명절의 번잡함이 빠져나간 정적 위로 아득한 시월이 드디어 내 삶의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아날로그의 시간이 깃든 우체통은 늘 기다림의 장소였다. 서성이는 발걸음과 기대에 찬 눈빛을 보듬어주던 곳. 돌이켜보면 삶의 고비마다 우리를 견디게 했던 것은 그 작은 통 안으로 스며들던 몇 줄의 다정한 문장들이었다. 멀리 떠난 이의 안부를 묻는 필체에는 밤새 다듬었을 마음의 결이 살아있었고, 종이의 촉감에는 보낸 이의 체온이 묵직하게 스며있었다. 이제는 디지털의 메마른 신호음들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세상이지만, 시월이라는 계절은 잊혀가던 기다림의 감각을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일깨운다. 우체통에 안겨있던 단풍잎은 계절이 인류에게 보낸 가장 오래되고 고결한 친필 서한이다. 먹물 대신 붉은 물감으로, 언어 대신 찬 이슬의 투명함으로 써 내려간 그 편지에는 세월을 견뎌낸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서정적 격조가 그득하다.
자세히 들여다본 나뭇잎의 잎맥은 오랜 시간을 지나온 인생의 주름과 닮아있다. 뜨거운 여름날의 치열했던 볕을 견디고, 무성했던 초록의 고집을 기꺼이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섬세한 핏줄. 나뭇잎은 제 몸의 가장 깊은 곳까지 수분을 비워내며 비로소 가장 화려한 마지막 빛깔을 빚어낸다. 우체통에서 꺼낸 그 작은 잎사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비워내지 않고는 물들 수 없노라고, 미련을 떨어내지 않고는 이토록 맑은 결실의 소식을 전할 수 없노라고. 시월이 건넨 이 비어있음의 편지는 겉으로 채우기에만 바빴던 내 삶의 모서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계절은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비워냄으로써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
우체통에서 꺼낸 시월의 사연을 가슴에품고 멀리 시선을 돌린다. 한가위 날 찾아와 마루를 온기로 채우다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간 자식들의 뒷모습, 저 멀리 타향이나 먼 이국땅에서 저마다의 삶을 일궈나가는 그리운 이들의 얼굴이 가을 하늘 위로 아련히 겹친다. 우리가 서로에게 다다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순간에도, 바람은 쉬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날라다 준다.
찬기운이 도는 창가에 서서 아침햇살을 받아내는 단풍잎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아련한 온기와 그리움으로 메워진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그리움을 가만히 받아안을 우체통 같은 마음의 여백이 내게 남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축복인가.
시월의 우체통은 비단 대문 옆의 작은 철제상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고요해진 우리의 내면, 타인의 그늘을 보듬을 줄 아는 성숙한 마음이야말로 가을의 사연을 받아 안는 참된 우체통이다. 우체통에서 꺼낸 붉은 편지를 오랜 수필집에 사이에 가만히 끼워 넣는다. 책장을 덮으며 창밖을 내다보니, 시월의 푸른 하늘이 마치 새로 개봉한 편지봉투처럼 훤하게 열려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가을은 저마다의 우체통을 통해 소리 없이 다가온다. 그 무심한 듯 따스한 우편물을 기꺼이 받아들고, 나 또한 누군가의 허전한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다정한 시월의 편지 한 장이 되고 싶다.
이종순 수필가는
'문예사조'로 수필 등단, '시조문학'으로 시조시인 등단
문학박사. 우석대학교 대학원 외래교수
한국국보문학 시조부문 대상 수상
교육부 유보통합 연구진 교육부장관상 수상
'창의 숲 연구소'와 '아이가 크는 숲'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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