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종합경기장이나 오래된 공장 부지를 새롭게 바꾸는 계획에는 공원과 광장이 빠지지 않는다. 조감도 속 나무는 이미 자라 있고, 사람들은 건물 사이를 걷고 쉰다. 하지만 실제 공사는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고, 건물마다 완성되는 시점도 다르다. 그렇다면 모든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사용할 수 있는 길과 광장, 공원을 시민에게 열 수는 없을까.
개별 건축공사에서는 공사차량과 자재 운반으로 외부공간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경을 후반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러 건물과 기반시설의 공사가 이어지는 대규모 개발사업이라면 모든 공간을 끝까지 닫아둘 필요는 없다. 공사 동선과 분리할 수 있는 길과 광장부터 주변지역과 연결할 수 있다.
공원과 광장은 얼마나 잘 만드는가뿐 아니라 언제부터 시민이 사용할 수 있게 하는지도 중요하다. 계획돼 있다는 것만으로 공공공간의 역할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직접 걷고 머물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공간이 된다. 런던의 킹스크로스(King’s Cross)와 엘리펀트파크(Elephant Park)는 전체 사업이 끝나기 전 길과 광장, 공원의 일부를 시민에게 먼저 열었다.
◀ 킹스크로스, 길과 광장을 먼저 사용하기 시작하다
킹스크로스는 철도와 운하를 중심으로 형성된 산업·물류 지역이었다. 창고와 철도시설이 있던 부지를 주거·업무·상업·교육시설이 공존하는 곳으로 바뀌면서 길과 광장을 전체 계획의 중요한 골격으로 삼았다.
2011년 예술·디자인 대학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가 옛 곡물창고를 개조한 건물로 이전할 무렵, 킹스크로스역에서 캠퍼스로 이어지는 킹스불러바드(King’s Boulevard)가 임시 포장 상태로 시민에게 열렸다. 이듬해에는 건물 앞 그래너리스퀘어(Granary Square)도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길의 최종 마감이나 전체 개발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문을 연 대학과 주변 지역을 연결한 것이다. 공사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이 길을 통해 오가며 새로운 도시 공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같은 길을 걷고 머무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장소에 대한 기억도 생긴다. 먼저 심은 나무 역시 주변 건물이 올라가는 동안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다. 사람과 나무 모두에게 공간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 엘리펀트파크, 공원을 먼저 만들겠다는 약속
런던 남부 엘리펀트앤드캐슬(Elephant and Castle)의 재개발사업에서는 공원 4,000㎡를 조기에 조성하는 내용을 아예 사업의 이행 항목에 포함했다. 2017년 1단계 공원이 문을 열면서 이 계획은 현실이 됐다. 이후 2021년에는 바위와 물을 활용한 놀이·휴식 공간인 엘리펀트스프링스(Elephant Springs)가 더해졌다.
답사 당시 엘리펀트스프링스 옆에서는 공원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공사 가림막의 안내판에는 작업 구역을 최대한 줄이고, 안전이 확보된 구역부터 순차적으로 개방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가림막 바로 옆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공공공간의 ‘시간’을 함께 계획했다는 점이다. 같은 크기의 공원이라도 언제 문을 여느냐에 따라 주민에게는 의미가 달라진다. 어린 자녀를 둔 가족에게 그 몇 년은 아이가 집 가까운 곳에서 뛰어놀고 이웃을 만나며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중에 더 좋은 공원을 만든다고 해도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려줄 수는 없다.
킹스크로스와 엘리펀트파크에서는 주변 공사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먼저 열린 길과 광장, 공원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었다. 두 사례는 무엇을 만들 것인지뿐 아니라, 어느 공간을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인지도 개발계획의 중요한 부분임을 보여준다.
◀ 전주, 무엇을 짓느냐와 함께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느냐
전주에서도 종합경기장과 옛 대한방직 부지처럼 여러 시설과 공공공간이 함께 계획되는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옛 종합경기장 부지에서는 마이스(MICE) 복합단지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전주시가 발표한 기존 계획은 전시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숙박·상업·문화시설을 함께 조성하는 내용이다. 지난 7월 조지훈 전주시장도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종합경기장 재개발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러 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무엇을 짓느냐와 함께 어떤 공간을 어떤 순서로 시민에게 열 것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문을 여는 시설까지 보행로도 함께 개방되는지, 광장과 녹지는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건물은 문을 열었는데 주변 길과 공공공간이 여전히 공사장이라면 새로운 시설은 한동안 도시와 제대로 연결되기 어렵다. 전체 사업의 준공 목표와 함께 길과 광장의 개방 예정 시점도 알 수 있다면, 시민은 그곳을 언제부터 일상에서 이용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옛 대한방직 부지도 사업의 단계와 조건은 다르지만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모든 공간을 한꺼번에 완성하기 어렵다면, 주변과 연결되는 길이나 사람들이 머물 공간부터 먼저 열 수는 없을까. 건물의 배치와 규모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이용 순서도 함께 논의되면 좋겠다.
물론 길과 광장을 무조건 먼저 만드는 것이 답은 아니다. 지하공사나 매설관, 공사차량 동선 때문에 먼저 만든 공간을 다시 뜯어내야 할 수도 있고, 공사가 이어지는 동안 안전한 보행 동선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먼저 열 수 있는 공간과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공간을 전체 공정 속에서 구분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몇 년은 시민에게도 그대로 흘러가는 시간이다. 그동안 길을 걷고 광장에 머물고 공원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곳은 완공되기 전부터 도시의 일부가 된다. 길과 광장을 먼저 여는 것은 도시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그곳에서 살아가는 시간으로 바꾸는 일이다.
/ 런던에서 강미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예감〉
건물보다 먼저 길과 광장을…도시가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않도록
■런던을 걸으며 전주를 생각하다〈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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