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안뜰 김영희 작가가 특별한 초대전으로 관객을 찾는다.
작가의 다섯번째 개인전 ‘계절이 머무는 소리’가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김제 카페 ‘늘숲’에서 열린다.
서예와 문인화의 정신을 현대적인 캔버스 위로 옮겨 심으면서 평단과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온 작가가 꾸리는 이 전시는 ‘전통의 깊이와 현대 감각의 만남’이라는 작가의 일관된 예술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동안 작가는 현대인들의 일상 공간과 멀어진 전통 예술을 캔버스라는 현대적 매체를 통해 복원하는 작업에 집중해 왔다.
이 자리는 자연의 순리와 인간 삶의 여정을 사계절의 묵직한 변화로 풀어낸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자작나무 연작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각적 운율로 표현했다.
카페 ‘늘숲’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작가의 자작나무 작품들이 어우러지면서 관람객들에게 시각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깊은 사색과 휴식을 선사한다.
자작나무 연작은 문인화의 핵심인 '기운생동(氣韻生動·사물의 내면적 생명력이 생생하게 표현됨)'을 현대적인 색채와 질감으로 완벽하게 번역해 낸 수작이다.
격조 높은 서예적 선과 대중적인 사계절의 아름다움이 결합, 보는 이들로 하여금 편안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며 공간을 밝혀주는 힘을 갖고 있다.
나뭇잎을 표현할 때 전통 수묵화의 ‘점염(點染) 기법’(붓으로 점을 찍듯 표현하는 방법)을 현대식으로 변형했다.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려 잔잔한 입체감을 주는 기법(임파스토 스타일)을 가미,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숲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물감의 묵직한 마티에르가 느껴지는 매력이 있다.
붉고 노란 단풍이 물든 가을의 정취, 보랏빛 신비로운 배경 속에 굳건히 서 있는 겨울 자작나무, 그리고 푸르른 생명력을 뿜어내는 봄·여름의 숲까지, 작가는 계절이 지나가며 남긴 흔적을 ‘소리’를 듣듯 섬세하고 따뜻한 필치로 포착해 냈다.
계절이 머무는 소리’에서도 볼 수 있듯, 캘리그라피처럼 유려하면서도 서예 특유의 기품과 뼈대가 있는 붓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작나무 시리즈는 계절별로 느낌이 다르다.
봄·여름(초록빛 숲)은 연두색과 초록색 잎사귀들이 화면 가득 생명력을 뿜어낸다. 깊어지는 숲의 터널 구도를 통해 생명의 시작과 찬란한 청춘의 에너지를 시각화했다.
가을(황금빛 숲)은 화면 전체를 주황색, 노란색, 황금색으로 가득 채워 풍요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함이 묻어나는 계절의 절정을 표현했다.
나무 사이로 번지는 빛의 느낌이 인상적이다.
늦가을·초겨울 (단풍이 진 숲)은 잎사귀가 대부분 지고 몇 잔재만 남은 채 흰 줄기가 도드라지는 시기이다.
캔버스의 질감을 살려 자작나무 특유의 거친 껍질 표면과 눈(目) 모양의 흔적을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회화적으로 묘사했다.
겨울(보랏빛 숲)은 배경을 차가운 청보랏빛으로 과감하게 처리, 눈 덮인 겨울 나무 숲의 고요함과 신비로움을 극대화했다. 잎을 모두 떨구었지만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깊은 사색을 유도한다.
"거실에서 외면받는 박제된 전통이 아닌, 현대인의 일상 공간과 어우러지는 살아있는 전통을 만들겠다"는 작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하고 묵직한 작품들이다.
포스터를 통해 공개된 작품들은 강렬하고 깊이 있는 색감의 면 분할과 먹빛의 조화가 돋보인다.
작가 특유의 힘 있고 유려한 서체와 현대적인 레이ㅍ아웃이 어우러져, 전통 서화의 대중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파릇파릇한 초록빛 정취와 물빛을 가득 머금은 작품은 청산(靑山)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작가가 평생 훈련해 온 문인화 특유의 정교하면서도 힘 있는 손끝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푸른 정적 속에 피어나는 자연의 생명력이 조화롭게 담겨 있다.
또다른 작품은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단풍의 가을과 황금빛 안식의 계절, 그리고 묵직한 산세를 단순화된 색면으로 과감하게 표현했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예적 필선과 원색의 면이 충돌하면서 자아내는 현대적인 세련미가 돋보인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작가는 퇴직 후에도 초등학교 방과후 서예 강사로 활동하며 본인도 서예와 문인화의 세계에 매진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화선지 발묵에 취해 40여 년을 작업해오면서 십여년 전부터는 한지의 전통적 재료를 활용,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사)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
대한민국서예전람회 및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강암서예대전 초대작가 등을 역임하면서 전통 예술계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왔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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