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그린 '초의선사 전신상'이 공개된다.
이는 단순한 외형 복사를 넘어, 평생 차(茶)를 사랑하고 학문과 선(禪)에 정진했던 초의선사의 온화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면의 정신과 인품을 눈빛과 표정을 통해 생생하게 이끌어낸 명작이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거장이자 마지막 어진화사였던 채용신의 독창적인 화풍과 기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선사가 오른손으로 나뭇결이 살아있는 구불구불한 주장자(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전신상이다.
짚신을 신고 서 있는 발의 방향과 자연스러운 자세는 정적인 일반 초상화와 달리 은거하는 고승의 풍모와 유랑하는 수행자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翠衣豊物肖像' (취의풍물초상)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 푸른빛이 도는 승복을 입은 선사의 모습을 명시하고 있다.
좌측 하단에는 작가의 서명(채용신 서)이 남아 작품의 진위를 확고히 한다.
극세필과 육리문(肉理文)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채용신의 가장 큰 장기인 '석지필법'이 엿보인다.
다성(茶聖) 초의선사(1786~1866)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눈가의 주름, 수염 한 올 한 올, 그리고 두피와 피부의 미세한 질감까지 극세필(매우 가는 붓)로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국화의 선 중심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코와 이마, 뺨 등 튀어나온 부분에 미세한 명암을 주어 시각적 입체감과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마치 살아있는 인물을 마주하는 듯한 실재감을 준다.
채용신 인물화의 뚜렷한 개성 중 하나는 옷주름(의습선)의 독특한 처리이다. 승복의 두꺼운 천 질감을 두텁고 강한 필선으로 표현하면서도, 자락이 떨어지는 라인을 다소 도식적이고 리드미컬하게 꺾어내어 화면 전체에 묘한 율동감과 현대적인 세련미를 부여한다.
조선 초상화의 대원칙인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다른 사람이다(일호불사 편시타인)'라는 정신에 철저히 입각해 있다.
단순한 외형 복사를 넘어, 평생 차(茶)를 사랑하고 학문과 선(禪)에 정진했던 초의선사의 온화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면의 정신과 인품을 눈빛과 표정을 통해 생생하게 이끌어낸 명작이다.
채용신은 1850년 서울 삼청동에서 출생, 조선시대 전통 양식을 따른 마지막 인물화가로 전통 초상화 기법을 계승면에서도 서양화법과 근대 사진술의 영향을 받아 ‘채석지 필법’이라는 독특한 화풍을 개척했다.
1905년 관직을 마치고 선조들의 고향 전주로 내려와 우국지사와 유학자들의 초상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1923년 정읍 신태인읍으로 이주, 채석강도화소를 만들고 초상화 전문 공방을 운영하다가 1941년 정읍에서 생을 마감했다.
대전 성암미술관은 다음 달 21일까지 추사 선생 탄생 240주년 기념 특별전을 연다.
평생지기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 1783~1859)과 함께 막역 친구로 꼽히는 초의(草衣)선사 의순(意恂, 1786~1866)에게 써준 반야심경, 초의가 맹호연과 이백, 두보 등 십여명의 시를 정갈하게 쓴 팔폭병풍, 채용신이 그린 초의선사의 전신상도 눈에 띈다. 초의가 그린 다산정사도와 선생이 주희의 고향인 신안을 동경하면서 쓴 신안유거(新安舊家)도 내걸렸다./이종근기자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