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한데 40년을 변함없이 이어온 지역축제가 있다. 임실 사선 문화제다. 세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지역축제 또한 한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1986년 시작한 사선문화제는 올해 40주년을 맞아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임실 관촌 사선대 일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사선문화제가 40년 역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양영두 사선문화제전위원장의 열정 때문이다. 지역민 중심의 향토축제를 전국 규모의 문화행사로 키워내고 지켜온 양영두 위원장을 만났다.
▪사선문화제가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위원장님의 감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
▶사선문화제를 시작한 것이 1986년입니다. 지역축제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에 민간 주로로 100명의 제전위원이 모여 “우리 임실을 위해 뭔가 뜻있는 일을 해보자”라고 모인 것이 그 시초입니다. 그 이듬해인 1987년 제1회 행사를 시작한 이후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네 번 변할 만큼 긴 세월입니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으셨을 텐데, 40년을 이어온 비결은 뭔가요?
-40년 세월을 이어오면서 어려움을 일일이 소개할 수 없지만, 사스와 메르스, 코로나 19 같은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창궐할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대중집회는 물론 이동까지 제한되는 상황이어서 행사 중단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시기에 되레 주민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줘야겠다며 대회를 강행했습니다. 태풍과 폭우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경제위기 등 최근 40년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시련을 안긴 일을 모두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 해도 쉬지 않고 사선문화제 사십 년의 역사를 써온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깁니다.
▪사선문화제가 다른 지자체 축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전국 대다수의 축제와 행사가 정부나 지자체가 주관하는 이른바 관 주도행사입니다. 하지만 사선문화제는 순수한 민간주도라는 것이 다른 축제와 다른 점입니다. 지역의 전승 문화, 즉 정부가 지정한 국민관광지 사선대의 명승고적 실화, 사신 선녀의 전설을 지키고 이어온 전통문화 축제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축제장에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탓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역축제가 먹고, 즐기는 데서 그치면 그 의미도 퇴색합니다. 사선문화제는 순수한 향토문화를 전승시키는 행사라는 점에서 자랑스럽습니다.
▪소충·사선문화상 시상도 이어오고 있는데
예, 올해로 35회 수상자를 냈습니다. 소충·사선 문화상은 처음에는 사선 문화상으로 시작되었는데 구한말 이석용 의병장과 28 의사의 충절을 기리는 소충사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소충(나라 사랑) 사선(고향 사랑) 정신으로 문화상을 확대했습니다. 국가·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들을 매년 시상하며 전국적 권위를 가진 상으로 성장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특히 소충·사선 문화상은 찾아드리는 상, 명예를 드리는 상으로 공모나 추천 일정을 제한하지 않고 일 년 내내 후보자를 찾고 추천을 받아 시상하고 있습니다. 그간 수상자로는 석전 황욱 선생,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우석대 설립자 서정상 박사, 언론계 대표 김홍국 하림 그룹 회장 등 기업인 8개 분야별 문화상 등 각계대표 400여 명이 수상했습니다.
▪사선녀 선발대회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지정한 국민관광지 사선대는 2,000여 년 전 네 분의 선녀가 풍광이 좋은 지역을 찾다가 사선대의 절경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사신 선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를 향토문화 전승으로 이어가고자 1987년 1회 대회를 시작해 2026년 제40회 대회를 마쳤고 그간 2,000여 명의 선녀 후보가 참가해 지성과 미모를 겨뤘습니다. 320명의 사선녀가 탄생해 방송인과 연예인, 항공사 승무원, 대학 강사와 직장인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40회를 맞은 올 행사에는 그동안 배출된 사선녀 10여 명이 참석해 연말에 사선녀 선후배 모임을 창립키로 뜻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양영두 위원장은
1970년대 국회 비서관과 정당 정책위원으로 엄혹했던 시기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이른바 YH 사건 때 부상을 입고 민주화 운동 상이 민주유공자가 되었다. 1980년 광주 민중 항쟁 때는 계엄사에 의해 구속돼 모진 고문 피해를 당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민당 전북도장 대변인, 민추협 운영위원, 직선 개헌추진 전국위 대변인 등으로 활동했다. 흥사단 상임대표와 민족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 민화협 공동의장, 대한민국 헌정회 자문위원등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 중앙당 문화에술위원장을 4연임했으며 당무위원과 고문을 지냈다.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당시에 축하문화예술단장을 맡기도 했다.
1986년 사선문화제 창립 후 축제를 이끌 뿐 아니라 장학사업에도 힘을 쏟아 38년간 임실지역 초중고 졸업생에게 상장과 부상은 물론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또한 독립운동가 후손 돕기 사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3.15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박준승 선생기념사업 등 지원했다. /복정권 기자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