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길목]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텃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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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텃세는 특정 공간이나 자원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경쟁이나 배척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서 나타난다. 텃세는 모임, 직장, 온라인 공간, 지역사회 등 여러 환경에서 발생하며 그 양상이 다르다.



텃세는 낯선 이를 밀어내는 보이지 않는 벽이다.

사전적 의미는 단순히 한 지역이나 조직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부리는 배타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마을에서는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데 라는 말로 나타나고 직장에서는 여기는 원래 이렇게 하는 곳이라는 말로 나타난다.



간혹 해외에서 벌어지는 국가 간 경기나 경연에서도 편파적 판정 시비가 일어나는 것을 본다. 어느 방송에 출연한 체조 요정 손연재에게, MC 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홀로 리듬체조의 본고장인 러시아로 갔는데 러시아에서 텃세가 있었는지" 물었다. 손연재는 "처음에 갔을 때 러시아 선수들이 연습할 동안 나는 끝에서만 연습했다”라고 고백했다. 또 "가끔 진짜 서러울 때가 있긴 했다"라며 "처음에 갔을 때 몸을 푸는 운동이 있었는데 나보고 맨 뒤로 가라고 해서 바도 잡을 수 없던 위치에서 몸을 풀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사는 어느 곳에든지 텃세 현상이 보인다.

인종 차별 문제가 사회 문제로 거론되는 서구에서는, 시골 지역일수록 현지인들이 노골적으로 타 인종에 대한 차별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미국이 텃세가 심해서 자기네 마을의 주류 인종이 아닌 사람을 대놓고 내쫓는 마을도 있으며, 현재에도 현지 지자체의 조례나 마을의 관습으로 타 인종의 정착이나 방문을 금지하는 곳까지 있다.



모임에서 텃세는 오랜 기간 활동한 터줏대감이 새로 참가한 사람을 배척하거나 멸시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직장생활에서는 신규자가 유능해 보이거나 승진이 빠를 것으로 예상될 때, 실력보다 경력이나 연차를 강조하며 정치질이나 괴롭힘을 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텃세는 단순히 ‘조금 불편한 인간관계’로 끝나지 않는다. 개인과 조직 나아가 지역의 활력까지 떨어뜨린다.



농촌사회에서는 텃세는 더욱 복잡하다.

귀농, 귀촌자가 마을에서 반복적으로 무시 당하거나 배제되면 자신의 의견을 내는 자체를 포기하며 소외감과 위축을 느낀다. 직장 내 텃세를 견디지 못한 신규자도 조직을 떠나버리는 것이다. 기존 터줏대감들의 방식만 고집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없어 조직의 발전을 막는다.

농촌은 오랫동안 이웃과 이웃이 서로 의지하며 사는 공동체다. 누가 어느 집안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서로 알고 지내는 관계가 오랜 시간 축적된 것이다. 이런 관계망은 농촌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오랜 관계가 새로운 사람에게는 높은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귀농, 귀촌 인구가 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중요 해졌다. 지역사회에서는 귀촌·귀농인이 마을에 정착할 때, 일부 지역에서 새로 온 사람에게 입촌비와 같은 명목으로 마을 발전 기금을 요구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발생한다. 발전 기금을 내지 못해 찍히기라도 하면 정말 어떠한 사회적 활동도 불가능하고 생활에 고립되어 버리면 정말 그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농사법이나 생활환경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과의 관계이다.

마을 회의에 참석해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민들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해당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은 이상, 20년을 살아도 외부인이라며 차별한다. 농촌은 집성촌이 많고, 유교 문화가 강해서 외지인 및 타 성씨인 이들을 타성받이라고 부르며 차별하기도 한다.특정 성씨로 이루어진 집성촌이 있는 곳은 그런 특성이 더욱 심하다. 집성촌의 친목 의식, 혈연 의식은 더 심한 편이다. 그만큼 배타성, 폐쇄성도 장난이 아니다.

특히 장의차 통행료 요구 사건의 경우 시골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고 있다. 도시 생활처럼 개인주의나 개인 프라이버시, 특이한 취미 활동 등 취향 존중을 원하는 사람은 일단 시골에서는 살기 힘들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원주민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공정치 않다.

시골에 찾아와 말썽을 부리는 외부인들도 있다. 시골이 닫힌사회고, 공권력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을 역이용하여 시골에 와서 갑질이나 쓰레기를 남기고 가버린다. 현지인에게 무례하거나 몰상식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외지인들 때문에 평화롭던 마을에서 텃세 문제가 생기는 일이 있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식만을 주장한다면 기존 주민들이 불편함을 느낀다. 결국 누가 먼저 살았느냐 가 아니라 서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있다.

중요한 것은 ‘배려’이다. 기존 주민은 새로 온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지역의 사정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결국 텃세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이 소멸해 가는 시점에 사람을 떠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고 새로 온 사람도 기존 공동체를 존중한다면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텃세는 사람 하나를 밀어내는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 공동체의 미래 하나를 밀어내는 일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가 발전하려면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젊은 세대가 돌아오고, 귀농, 귀촌이 정착하고 새로운 사업가와 문화 예술인이 찾아와야 한다.

오래된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지켜온 공동체의 가치를 설명할 기회를 주고 새로운 주민에게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품을 때 마을은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가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때 그 마을에는 미래가 생긴다.

/양규창(전북특별자치도문인협회 부회장, 전 혼불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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