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쟁이 극장을 넘어 배우의 집 앞까지 번졌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을 향한 역사 왜곡 비판은 출연 배우에 대한 인신공격과 사생활 침해로 이어졌다. 지난 4일에는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영화 상영 중단과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작품에 대한 의견 차이가 개인의 일상을 압박하는 행동으로 옮겨간 것이다.
영화는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형사와 기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논란의 핵심은 극중 인물들이 중앙정보부 등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한다는 데 있다. 국민의힘 등 정치권에서는 이를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했고, 제작진은 특정인을 배후로 규정하거나 새로운 역사적 결론을 확정하려는 작품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여기서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가설이다. 영화 속 인물이 제기하는 의혹은 그 자체로 역사적 증거가 되지 않는다. 관객이 느끼는 개연성도 사실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다루는 작품일수록, 어떤 부분이 기록에 근거하고 어디부터 상상인지 설명할 책임이 크다. 특히 죽음과 유족의 고통이 걸린 사건에서는 창작의 자유와 함께 세심한 윤리적 판단이 필요하다.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더라도 관객은 다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창작자의 의도와 작품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모두 정치적 공격으로 돌리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어떤 장면이 어떤 사실과 충돌하는지, 극적 장치가 관객에게 어떤 오해를 줄 수 있는지 따져 묻는 비평은 필요하다.
그러나 비평에는 근거와 대상이 있어야 한다. 작품의 설정을 비판하다가 배우의 외모를 조롱하거나 정치적 충성심을 심문하는 순간, 논쟁은 설득력을 잃는다. 한 정치인은 출연 배우를 겨냥한 게시물에 외모를 빗댄 “북한상”이라는 댓글을 달았고, 이후에도 이를 옹호하는 취지로 발언했다. 공적 책임을 가진 정치인의 언어가 작품 분석보다 개인에 대한 낙인으로 향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정치인은 역사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다. 잘못된 묘사가 있다면 자료를 제시하고 반론을 펼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인의 발언은 지지자들에게 행동의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만큼 표현의 무게를 헤아려야 한다. 논쟁을 중재해야 할 사람이 조롱을 보태면, 시민들은 상대를 이해할 이유보다 공격할 명분을 얻게 된다. 정치의 책임은 분노를 크게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의견이 공존할 조건을 지키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번 사태는 문화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습관도 돌아보게 한다. 영화의 완성도와 역사적 해석을 살피기 전에 작품과 배우를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 분류하려는 태도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감상이 충성의 표시가 되고, 비평은 상대 진영을 벌주는 수단이 된다.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자신의 판단을 설명할 기회를 잃는다.
그 결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제작사는 참석자들의 안전을 이유로 무대인사 등 영화 관련 행사를 취소했다. 창작자와 관객이 직접 만나 질문하고 답할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논란이 커질수록 대화가 늘어야 하지만, 위협이 개입하면 오히려 대화의 공간부터 닫힌다.
표현의 자유는 작품을 비판하지 말라는 요구가 아니다. 비판의 자유도 상대를 위협할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 관객은 영화를 거부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고, 창작자는 그 비판에 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안전과 일상을 존중하는 것은 어느 정치적 입장에 서 있든 지켜야 할 기준이다.
역사를 존중하는 사회는 기록을 검토하고, 가설의 근거를 묻고, 잘못된 설명을 바로잡는다. 동시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질문할 여지도 남겨둔다. 공식 발표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질문을 닫아서도 안 되고, 의문이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하는 음모를 사실로 채워서도 안 된다. 의심에는 검증이 따라야 하고, 확신에는 증거가 필요하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에게 두 가지 책임을 묻는다. 창작자는 역사적 상처를 얼마나 신중하게 다루고 있는가. 정치와 시민사회는 불편한 표현을 얼마나 성숙하게 비판하고 있는가. 그 답은 배우의 집 앞에서 얻을 수 없다. 기록을 펼치고 작품을 분석하며 서로의 반론을 듣는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역사를 지키겠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존엄부터 지켜야 한다. / 강윤정(교수·원광대학교 자율전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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