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금용당(金蓉堂) 일섭(日燮, 1900~1975) 스님의 삶과 예술 세계를 총망라한 <한국 근현대 불교미술의 비수갈마: 금용 일섭>(전 6권)이 출간됐다. 이 전집이 복원해 낸 것은 금용당 일섭이라는 한 스님의 작품 목록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참혹한 전쟁, 전후 복구기를 관통한 불사 현장과 그곳에 땀 흘렸던 사람들, 그리고 오늘까지 굳건히 이어지는 한국 불교미술의 한 계보가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책 제목에서 비수갈마는 ‘제석천의 신하로 여러 가지 도구나 고예품을 만들고 건축을 맡아보는 천신’을 뜻하는 용어로 ‘불모(佛母)’인 금용 일섭스님을 높여 부른 명칭이다.
아무리 적은 불사(佛事)라도 찾아오는 불모가 있으면 흔연(欣然)히 맞아 함께 일하고 가난한 절을 만나더라도 이해를 떠나 신심(信心)으로 불사에 임했다. 몸은 한 평생 눈부신 채색과 함께 하였지만 언제나 건실(健實)하고 소박했으며 아무리 바빠도 예불(禮佛)을 거르지 않았고 밤이 늦어도 일기는 꼭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다.
이 전집은 2014년 김제 부용사 지관스님이 일섭스님의 유품을 송광사성보박물관에 기탁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24년 정식 기증으로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연보를 비롯한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국 각지에 흩어진 일섭스님의 작품을 추적·조사하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조계산파 연봉 봉린(1888~?) 문하에서 그림을 시작했으며 당대의 뛰어난 화승인 마곡사파 보응 문성(1867~1954)에게 사사했으며, 고산 축연·춘화 만총 등을 찾아가 그림을 배웠다. 이후 전국의 사찰을 돌며 불화와 불상 조성, 단청과 문화유산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1935년 김제 금산사 미륵불 조성 경쟁을 통해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뒤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1934년 3월 9일 밤 실화로 소실된 미륵(彌勒) 본존상을 당시 금산사 황성렬주지가 가산거사 김수곤( 등의 시주금 1만 6,000여 원을 들여 복원불사(復原佛事)를 하게 된다. 미륵본존상 복원불사 입찰당시 김보응, 이석성, 김복진 등과 참가, 3자 3치의 축소모형 입불(立佛)을 제작(1935년 8월21일~9월10일) 출품했다. 당시 감정 심사원 석전 박한영 선생과 이당 김은호 화백으로부터 최유망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은바 있었다.
그는 1938년 김제 백구면 부용사에 불상불화전문연구성예원(佛像佛畵專門硏究聖藝院)'을 설립, 불상, 불화(佛畵) 전문 연구 기관으로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국내 최초의 전통 불교미술 전문 교육·연구 기관이다. 이를 통해 전문적인 화원을 양성했다. 성예원을 통해 이어진 그의 예술적 전통은 선운사 사천왕상을 작업한 송복동(구봉스님)을 비롯, 현재까지 5대에 걸쳐 280여 명의 문도로 이어지고 있으며, 현대 한국 불교미술의 중요한 한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 제48호 임석정을 비롯, 전북도 문화재 신언수, 그리고 김우일, 남인식, 박상순, 송복동, 신병철, 유봉래, 김지죽, 박준수, 신언식, 이충열, 박유종, 서광성, 조정우, 임동용, 이철우, 이수철, 이정오, 우국정, 이명열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나왔다.
'성예원'은 부처님의 성(聖)스러운 가르침을 표현하는 불교 예술(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전승하는 도량 (院)이라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단순히 스승이 제자 개인에게 기술을 전수하던 과거의 도제식 방식을 넘어,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불교미술 교육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실제로 성예원을 거쳐 간 수 많은 화원들은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단청장 등으로 활약하며 현대 한국 불교미술의 핵심 계보(일섭문도)를 형성하는 주역이 됐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쇠잔해가던 전통 불교미술의 맥을 잇고, 전국의 사찰 문화재를 보수·조성할 정예 불모(佛母)들을 키워낸 한국 근현대 불교미술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과거의 연구소가 아니라, 끊어질 뻔했던 대한민국 전통 불교미술의 필선과 색채를 지켜내고 현대까지 이어지게 만든 역사적인 산실이다. 김제가 지닌 깊은 예술적 전통과 예맥(藝脈)'의 자취와 깊이가 현대 우리에게는 아득히 멀고 아련하게 느껴질 만큼 깊고 융숭하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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