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대도시 대형병원의 화려한 첨단 의료 장비와 거점 국립대병원의 중증 진료 논의 뒤편에는, 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 지역의 생명선을 홀로 지탱하는 100병상 안팎의 소규모 지역공공의료원들이 있다. 정년퇴임 후 이곳 진안에서 군민들과 부대끼며 매일 절감하는 것은, 수도권과 대형병원 중심의 획일적인 보건의료 정책이 이 소규모 지역병원들을 얼마나 가혹한 구조적 고립과 재정적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농어촌 소규모 의료원이 마주한 의료 현실은 대도시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고령화율이 30~40%를 훌쩍 넘어선 초고령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절실한 것은 고난도 암 수술이나 첨단 로봇 수술이 아니다. 만성질환의 지속적인 관리, 급성기 치료 후 기능 회복, 그리고 무엇보다 거동이 불편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생애 말기 돌봄과 재택의료다. 그러나 현행 행위별 수가제와 국가 보건의료 재정 지원 체계는 오로지 ‘환자를 병상에 얼마나 많이 입원시키고, 고가의 검사와 처치를 얼마나 많이 행하는가’에만 보상을 집중하고 있다.
산골 마을 독거노인의 가정을 직접 찾아가 콧줄(비위관)과 소변줄(유치도뇨관)을 교체하고 욕창을 치료하는 헌신적인 방문진료와 재택의료는, 현행 제도 아래서 턱없이 낮은 수가 탓에 할수록 병원의 적자를 키우는 ‘비효율적 사업’으로 전락해 있다. 왕진을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산간 도로를 한 시간씩 달려가는 이동 시간과 노력은 수가 체계 어디에도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다.
여기에 정부의 획일적인 평가 잣대는 소규모 의료원의 숨통을 더욱 죄어온다. 100병상 미만의 작은 병원은 규모의 한계로 인해 전문의 전담 인력 수나 고가 장비 보유 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 그 결과 정부가 매년 수천억 원을 쏟아붓는 ‘의료질평가 지원금’이나 각종 정책 가산금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대도시 대형병원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수백억 원의 지원금이 쏟아지는 반면, 인구 소멸 지역의 유일한 응급실과 입원실을 지키며 적자를 온몸으로 감내하는 시골 공공병원은 ‘경영 비효율’이라는 낙인 속에 재정적 고사 위기로 내몰리는 처참한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지역의료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형병원 침상 중심에 갇힌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가정을 잇는 ‘재택의료와 통합돌봄 체계’를 공공의료의 핵심 축으로 세워야 한다. 농어촌 지역에서 재택의료는 단순한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대학병원 입원을 줄이고 존엄한 삶과 임종을 지켜내는 가장 효과적인 필수 의료이자 국가적 안전망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세 가지 제도적 결단을 서둘러야 한다.
첫째, 총액형 사후보상(공공정책수가) 전면 도입: 환자 수나 병상 규모에 연동되는 행위별 수가제의 족쇄를 풀고, 소규모 공공의료원이 필수 진료와 재택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기본 인력과 운영비를 국가와 지자체가 전액 보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둘째, 지역 맞춤형 공공성 평가 지표 신설: 대형병원 중심의 획일적 양적 평가를 걷어내고, 취약지 의료 접근성 유지와 방문진료 실적, 취약계층 돌봄 연계도를 평가하여 소외된 소규모 병원에 재정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셋째, 완결형 재택의료·돌봄 네트워크 법제화: 의료원과 보건소, 지자체 복지 부서, 그리고 전북대병원과 같은 거점 국립대병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지역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이에 걸맞은 행정 권한과 재정을 뒷받침해야 한다.
1970년대 환자의 지불 능력을 따지며 생명을 갈랐던 야만의 시대나, 오늘날 병원의 규모와 환자 수를 따져 국가 지원을 가르는 관료적 잣대나 소외된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을이 사라져가도 그곳에 단 한 사람의 주민이 살아 숨 쉬는 한, 국가는 의료의 손길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100병상 미만의 작은 공공병원이 지역민의 든든한 건강 울타리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제도의 물길을 바꾸는 일,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완수해야 할 가장 숭고한 헌법적 책무다./조백환(진안의료원장)
100병상 미만 소규모 공공의료원의 절규
[기획 연재: 의료와 법의 경계에서] ③ 사라져가는 마을의 마지막 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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