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요즘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틀렸다고 말하고, 때로는 적으로 규정한다. 온라인에서는 조롱과 비난이 넘쳐나고, 정치와 사회의 갈등도 타협보다 대립으로 치닫는다. 공포와 불안이 불신을 낳고, 불신은 혐오와 공격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혐오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삶에 대한 불안이 자리한다. 청년은 일자리와 미래를 걱정하고, 중년은 고용과 가족을 걱정하며, 노년은 소득과 건강을 걱정한다. 특히 지방에서는 인구감소와 청년 유출, 고령화가 겹치면서 '우리 지역의 미래가 과연 있을까'라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지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이 줄어들고 상권과 생활 기반이 약해지면서 공동체의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대와 계층이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기보다 상대를 탓하기 시작하면 공동체의 신뢰는 더욱 약해진다. 청년과 노인, 원주민과 귀촌인,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먼저 사람들의 불안을 줄여야 한다. 청년에게는 일자리와 주거를, 농촌과 소상공인에게는 지속 가능한 소득 기반을, 노년층에게는 돌봄과 사회참여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경쟁자가 아닌 이웃으로 바라볼 여유도 생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만남의 회복이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정작 가까운 이웃의 삶은 모를 때가 많다. 세대가 함께하는 마을공동체와 자원봉사, 주민자치 활동을 활성화하고 지역의 문제를 주민들이 함께 논의하고 해결하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쌓일 때 신뢰도 만들어진다.
정치와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갈등을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하기보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혐오를 없애자고 누군가를 또 다른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혐오가 자라나는 불안과 고립, 불신의 토양부터 바꾸어야 한다.
어쩌면 해답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주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될 수 있다.
혐오의 시대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사람은 결국 이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작은 관심과 존중이다. 이웃을 다시 생각하는 것, 그것이 혐오의 시대를 건너는 가장 인간적인 출발점이다.
/정금성(지역활성화연구소장)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