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호남 성리학의 큰 스승, 일재 이항을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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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배움은 삶이 되고, 삶은 시대를 움직인다’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한 사람의 삶이 그 시대에 머물지 않고 후대 사람들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정읍의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1576)이 그렇다.

정읍시가 9월의 역사인물로 일재 이항을 선정한 것은 단순히 한 시대를 대표했던 대학자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그의 삶을 다시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그가 남긴 학문만큼이나 배움과 삶을 하나로 실천했던 자세에 있기 때문이다.

이항은 한양에서 태어나 일찍이 무예를 익혔다. 스물여덟 무렵 학문에 뜻을 두고 박영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도봉산 망월암에서 오랫동안 학문에 전념했다. 이후 태인으로 내려와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학문을 이어갔고, 기대승·김인후·노수신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며 성리학을 깊이 탐구했다.

특히 이항은 이(理)와 기(氣), 태극과 음양의 관계를 하나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 그의 독자적인 성리설은 기대승을 통해 퇴계 이황에게 전해졌고, 이황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논쟁은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의 학자들이 인간과 세상의 이치를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내가 일재 이항을 더욱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의 학문이 제자들의 삶을 통해 현실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의 문하에서 공부한 김천일과 변사정 등이 의병을 일으켰고, 안의와 손홍록은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지 16년 뒤 일어난 국난 앞에서 제자들이 보여준 선택은 이항이 평생 강조했던 학문과 실천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항이 임진왜란을 직접 겪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나라가 위태로운 순간에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내놓았다면,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서 스승의 가르침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많이 아는 것과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같은 일이 아니다.

일재 이항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배움은 내 삶에서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500년 전 태인 땅에서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길렀던 한 선비의 삶을 오늘 다시 돌아보는 까닭이다.

배움이 지식에 머물지 않고 삶이 될 때, 삶이 공동체를 위한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한 사람의 학문은 시대의 정신이 된다.

일재 이항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가르침도 어쩌면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길에 있을 것이다.

/오승옥(문화활동가·관광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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