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이라는 우주 - 반복과 욕망의 미학

김스미의 미술산책〈78〉 쿠사마 야요이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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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저게 정말 작품인가?” 처음 쿠사마 야요이(1929-2026)의 호박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다. 어린이의 그림처럼 노란색, 초록색 호박에 촘촘하게 점을 찍었다. 미술시장에서 호박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심지어 서울옥션에서 대형 평면 회화가 104억 5천만 원에 거래되며 호박은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땡땡이 점박 호박을 세상에 남기고 일본의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는 올해 세상을 떠났다.

쿠사마가 이 호박을 통해 집요하게 반복한 것은 인간 욕망의 끝없는 증식이다.

하나의 점이 수백 개가 되고, 하나의 호박이 무한한 이미지로 복제된다. 우리의 시선도 그 반복에 빨려 들어간다. “우리는 왜 하나의 이미지에 이토록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가?” 쿠사마의 호박은 현대미술과 미술시장의 욕망을 귀엽고 냉소적으로 비춰준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는 점과 그물 같은 환각에 시달린 쿠사마의 편집증은 그의 회화와 설치작업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1957년 뉴욕, 전위미술과 미니멀리즘, 팝아트의 현장에서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한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정신병원 생활과 창작을 병행하며 작업을 이어간다.

그의 작품은 반복과 증식, 무한, 자기소멸이다. 점과 그물, 거울, 호박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개별적인 자아가 거대한 우주 속으로 흡수되는 경험이 자기소멸(Self-Obliteration)이다. 특히 호박은 둥글고 불완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형태 때문에 작가에게 특별한 애착의 대상이었다.

본태박물관의 ‘Pumpkin’은 2013년 조각작품이다. 울퉁불퉁한 노란 호박에다 크고 작은, 검은색의 강렬한 대비로 반복적인 점무늬를 새겼다. 완벽하고 매끄럽고 화려한, 이 거대한 호박은 조각이 아니라 어떤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둥근 형태는 풍요와 생명을 연상시키지만, 무수한 점은 오히려 개체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결국 호박은 하나이면서 무한이고, 귀여우면서도 낯설며, 견고한 물질이면서 끊임없이 증식하는 이미지다.

초록색 ‘Pumpkin’은 평면 회화다. 검은 배경과 초록색의 대비, 화면을 가득 채운 점 패턴은 관객의 시선을 확 끌어당긴다. 호박이라는 하나의 이미지가 반복을 통해 얼마나 강력한 기호가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쿠사마의 호박 앞에서 우리는 “왜 호박인가?” 그리고 “왜 이 호박에 이토록 큰 가치가 부여되는가?” 현대미술이란 이름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 등급은 누가 매기는가? 에 대한 허탈한 생각이 스친다. 심지어 이 점무늬는 너도나도 따라 하는 정체불명의 예술적 기호가 되었다.

쿠사마에게 호박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수용한 방법이었다. 하나의 이미지를 무한 복제하면서 개인의 자아마저 그 속에 녹여버렸다. 심리학에서는 자아의 소멸이란, 삶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개인적으로는 큰 위기 순간이다. 반드시 구조시스템이 필요하다. 작품 속에서 자아를 소멸 시킨, 즉 작가에게는 생명 장치 같은 예술혼과, 작품의 가치를 증식시키려는 시장이 한 화면에서 만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쿠사마는 어쩌면 이 지점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쿠사마의 호박은 화려한 대중적 이미지인 동시에 현대인의 욕망을 비추는 날카로운 거울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결국 호박이 아니다. 유명세와 가격과 열망을 끝없이 덧붙이는 가스라이팅 된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화가, 칼럼니스트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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