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꽃무릇과 선운사 영산전 기우귀가도(騎牛歸家圖)를 보세요

이종근 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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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붉은 꽃무릇이 고창 선운산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선운산 일대 꽃무릇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 절정을 이루고 있다. 추석 연휴와 개화 시기가 맞물리면서 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탐방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후기 불교건축물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는 고창 선운사 영산전이 최근들어 국가지정 보물로 승격돼 지정서 전달식이 열렸다. 영산전(靈山殿)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 영축산(영산)에서 불교 경전인 ‘법화경’을 설법하던 법회의 현장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법당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머무는 진리의 성전이자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 펼쳐지는 공간이라는 큰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 동쪽에 있던 영축산(靈鷲山)을 줄여 '영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며, 좌우에는 갈라보살(또는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 혹은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협시한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8가지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함께 봉안되는 경우가 많아 팔상전(捌相殿)이라고도 부른다. 부처가 설법하는 장엄한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탱화가 후불탱화로 걸려 법회의 현장감을 더한다.

「선운사영산전성조시주록서禪雲寺靈山殿建造施主錄序」는 영산전이 1821년에 보수공사를 통해 조성됐고, 기우귀가도(騎牛歸家圖)를 비롯한 내부의 다채로운 벽화들이 그 무렵 그려진 것임을 알려준다.

소를 탄 동자가 대금을 부는 모습은 얼핏 목가적 풍경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화가들도 소 타고 피리 부는 아이를 즐겨 그렸다. 최북, 정선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기우취적도(騎牛吹笛圖)에는 명리를 벗어난 목가적 이상향이 담겨있다.

그러나 선운사 벽화는 들여다볼수록 이국적이고 생경스럽다. 높다란 뿔과 비쩍 마른 몸을 지닌 흰 소는 인도(印度)에서나 마주칠 만한 형상이고, 무장(武將)의 복갑(腹甲)을 두른 것 같은 독특한 복식을 한 아이의 부리부리하고 또렷한 눈매도 시골 목동과는 거리가 있다. 아이는 소 등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다. 소와 비례가 맞지 않아서 아이가 소를 탔다기보다는 깔고 앉은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손에 든 대금도 구멍의 위치나 개수가 실제와 맞지 않는 데다 지나치게 길쭉해서 지팡이로 쓰기에 더 적합한 모양새다. 엉터리 운지법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길들지 않은 시커먼 소의 몸통이 수행과 더불어 차츰 흰색으로 변하게 되는데, 소가 순백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 그림이 바로 ‘무애’다. 화사는 곽암의 심우도를 바탕으로 보명의 목우도에 나타나는 소의 색깔까지 더했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을 알고 그림을 다시 보면 아이의 손에 쥔 대금이 번뇌의 뿌리까지 베어낸 취모리검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이의 휘날리는 옷자락과 엉성한 운지법은 걸림 없는 경지를 드러내기 위해 부러 그린 것 같기도 하다. 화사(畫師)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이의 목에 난 세 가닥 주름(三道)과 늘어진 귓불, 달처럼 원만한 얼굴, 넓고 반듯한 눈매,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어떤 이를 가리키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아이는 바로 깨달은 이, 즉 붓다를 상징한다. 화사는 여러 장치를 통해 자칫 목가적 풍경화로 주저앉을 그림을 선불교의 수행화로, 부처의 상호(相好)를 담은 불화로 건져 올리고 있다.

이 벽화가 근래 사찰에서 그려지는 이발소 풍의 십우도와 다르게 사람의 마음을 움켜쥐는 힘은 여기서 비롯한다. 영산전의 보물 지정으로 고창 선운사는 국가지정 보물 9점을 간직한 문화유산의 보고이자, 동백나무 숲 등 천연기념물과 다양한 국가유산을 품은 살아있는 박물관이 됐다.

선운산 꽃무릇은 국내 대표적인 꽃무릇 명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붉은 꽃밭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선운사 주변의 사찰 경관, 계곡이 어우러져 가을철 탐방 명소로 자리 잡았다. 꽃무릇은 꽃이 진 뒤 잎이 돋고, 잎이 사라진 뒤 다시 꽃이 피는 독특한 생태적 특성을 보인다. 이 때문에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데서 ‘만날 수 없는 인연’이라는 상징적 의미로도 알려져 있다. 선운산에서는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붉은 꽃무릇 군락이 넓게 펼쳐져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꽃길을 따라 선운산의 자연과 사찰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도 탐방객들의 관심을 끄는 요소다. 꽃무릇과 함께 반드시 선운사 영산전과 기우귀가도(騎牛歸家圖)를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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