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주거는 어떤 수준이어야 할까. 영국에서는 지방정부가 공급한 공공주택이 최고 권위의 건축상을 받고, 시간이 흐른 뒤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유산으로 보호되는 사례도 있다. 노리치의 골드스미스 스트리트(Goldsmith Street)는 지방정부가 직접 공급한 사회임대주택으로, 2019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의 스털링상을 받았다. 런던 캠든의 알렉산드라 앤 에인스워스 에스테이트(Alexandra and Ainsworth Estate)는 지방정부가 공급한 공공주택단지로, 1993년 영국의 등록문화유산 Grade II*(그레이드 투 스타)로 지정됐다.
골드스미스 스트리트는 공공임대주택에 패시브하우스 기준을 적용해 적은 에너지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알렉산드라 앤 에인스워스는 독립된 고층 타워 대신 계단식 주거동과 보행가로를 결합해 높은 밀도를 확보하면서도 개별 외부공간과 녹지, 놀이공간을 함께 계획했다.
그렇다면 공공이 공급하는 주택은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 우리는 집을 고를 때 면적과 가격뿐 아니라 채광과 전망, 재료와 실내 분위기, 주변 환경까지 살핀다. 공공임대주택에서도 이러한 조건은 주거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한정된 예산으로 공급량을 확보해야 하더라도 입주 후 바꾸기 어려운 공간의 질과 사생활, 냉난방비에 영향을 주는 에너지 성능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지가 중요하다. 결국 공공임대주택의 품질은 예산의 문제이면서, 우리 사회가 어떤 주거 수준을 지향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 노리치시, 직접 공급하며 주거의 기준을 높이다
골드스미스 스트리트는 노리치시가 주택공급기관들과 함께 추진한 2008년 RIBA 설계공모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주택협회들이 공급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세계 금융위기로 사업이 중단됐고, 이후 노리치시가 직접 사업을 추진해 전량을 사회임대주택으로 공급했다. 공모 당시에는 요구되지 않았던 패시브하우스 인증도 이후 목표에 추가했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입주자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한 선택이었다.
주거동 사이의 겨울철 일조를 확보하도록 지붕 형태를 조정하고, 창의 위치를 세심하게 배치해 세대 간 시선 간섭을 줄였다. 연립주택에는 개별 정원을 두고, 주택 뒤편에는 차량 통행과 분리된 공동 외부공간을 마련했다. 가족이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공간과 아이들이 놀고 이웃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확보한 것이다. 사업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는 지붕과 후면 외벽의 마감을 변경했지만 패시브하우스 성능은 유지했다. 비용을 줄이면서도 입주자의 냉난방비와 생활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성능은 지킨 것이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한 사례다.
◀ 높은 밀도와 좋은 주거환경을 함께 만들다
런던 캠든의 알렉산드라 앤 에인스워스 에스테이트는 독립된 고층 타워 대신 길게 이어지는 계단식 주거동과 보행가로를 결합해 많은 주택을 담은 공공주택단지다. 철도변에는 높은 주거동이 서고, 맞은편과 남쪽으로 갈수록 건물 높이가 낮아지며 단지 안의 보행공간을 감싼다. 각 세대에는 테라스나 작은 외부공간이 마련돼 있다. 집 안에서 곧바로 공동공간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쬐고 식물을 두거나 잠시 머물 수 있는 자기만의 바깥 공간을 한 번 거치게 된다. 사적인 집과 공적인 거리 사이에 작은 완충공간을 둔 셈이다.
단지 안쪽에는 차량과 분리된 보행가로가 길게 이어진다. 현관을 나서면 자동차 도로보다 먼저 사람들이 걷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길과 녹지를 만난다. 주택의 출입구와 테라스, 놀이공간과 공원이 이 보행가로를 따라 이어져 집 앞의 생활과 단지 전체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곳에서 인상적인 것은 높은 밀도를 확보하면서도 주거의 질을 세대 내부에만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주택을 넣기 위해 외부공간과 보행환경을 줄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주거계획의 중요한 일부로 받아들였다.
알렉산드라 앤 에인스워스는 1970년대에 건설됐고 1993년 Grade II*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지방정부가 공급한 공공주택이 시간이 흐른 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
◀ 좋은 주거의 기준, 공공주택에서 시작하자
공공주택은 좋은 주거의 기준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공적 재원을 투입해 오랫동안 사용하는 만큼 초기 건설비뿐 아니라 입주 이후의 생활과 유지관리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채광과 사생활, 에너지 성능, 재료의 내구성과 외부공간 가운데 무엇을 우선 지킬 것인지 정하는 것도 공공의 역할이다.
골드스미스 스트리트는 비용을 조정하면서도 에너지 성능을 지켰다. 알렉산드라 앤 에인스워스는 높은 밀도를 확보하면서도 세대별 외부공간과 보행가로, 녹지와 놀이공간을 주거계획 안에 함께 넣었다. 하나는 건물의 성능에서, 다른 하나는 공간의 구성에서 공공주택이 어디까지 좋은 주거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주시와 전북도의 공공주택에서도 지역에 맞는 주거의 기준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주택을 공급하고 매입하거나 새로 설계할 때 몇 채를 확보할 것인가와 함께 채광과 에너지 성능, 사생활과 외부공간, 보행환경을 어느 정도까지 담아낼 것인지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전북개발공사와 시·군에서 쌓은 경험이 다음 공공주택으로 이어진다면 그 기준도 한층 구체화될 수 있다. 입주 이후의 에너지 사용과 유지관리 비용, 외부공간과 보행환경에 대한 거주자의 평가를 함께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어떤 설계가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됐는지 확인하고, 다음에 공급하는 집의 기준을 조금씩 높여갈 수 있다.
골드스미스 스트리트와 알렉산드라 앤 에인스워스를 보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많은 집을 공급하는 것과 좋은 집을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목표일까. 필요한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면서도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은 주거의 기준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공공주택의 역할일 것이다.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