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시아 대지 위에 서 있는 거대한 고인돌을 마주할 때, 전통 고고학은 주로 유구의 매장 주체부, 출토 유물(토기·청동기), 그리고 석재의 이동 및 축조 방식 등 물리적·지형적 요소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고인돌의 진정한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동안 학계가 간과해 온 두 가지 핵심 시각 요소, 즉 덮개돌의 장축(長軸)과 하부 구조의 중심 통로가 지향하는 방향성, 그리고 구조적 형태와 조형성에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단일 유구에 대한 개별적 분석을 넘어, 고인돌 간의 공간적 관계와 군집(群集) 전체가 형성하는 공간 배치에 담긴 천문학적 의도를 새롭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고인돌의 진정한 생명력은 개별 존재감뿐만 아니라, 고인돌과 고인돌, 군집과 군집 사이의 유기적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방위와 방향성은 인류가 천문과 지리를 이해하고 공간을 질서화해 온 가장 원초적이고 핵심적인 축이었다. 고인돌의 형태와 배치 방향, 그리고 군집 형태는 이를 조성했던 선사인들의 의식 구조와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투영하는 정밀한 물질적 기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량적·체계적인 연구 접근은 여전히 학계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연구의 지체는 관점의 근본적인 한계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의 고인돌 연구는 고개를 숙인 채 오직 땅의 시선에만 갇혀 있었다. 그러나 선사인들의 삶과 의식은 대지 위에 발을 딛고 서서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확장되었다. 선사사회에서 태양과 달, 그리고 수많은 항성과 행성들의 주행 규칙을 읽어내는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나 관념적 유희가 아니었다. 그것은 계절의 순환과 기후 변화를 정밀하게 예측하여 농경 생산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공동체의 생존을 담보하는 절대적인 과업이었다. 한 해의 농사가 곧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시대에 거대한 석재를 운반하여 고인돌을 구축한 행위는, 단지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단순한 무덤 제작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의 질서와 대지의 생명력을 연결함으로써 생사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선사인들의 고뇌와 의지가 결집된 거석 의례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고인돌을 단지 차가운 거석 분묘로 한정하는 평면적 시각에서 벗어나, 밤하늘의 별자리와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태양의 운행을 통섭하는 입체적 시선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하늘의 절대적인 권능을 관측하고 이를 지상에 재현하려 했던 선사인들의 의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인돌 연구는 결국 기술적 분류와 단순 유물 분석이라는 수사학적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정신문화의 시원(始原)에 담긴 진정한 문명사적 의미를 스스로 기각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고인돌에 투영된 천문지리적 지식과 정밀한 방향성은 단절된 역사적 파편이 아니다. 이는 오랜 시간 정보로 축적되고 전승되어, 고구려 시대에서 제작되어 사라졌다가 조선 시대에 발견되어 비석에 각인되며 꽃을 피운 『천상열차분야지지도(天象列車分野之圖)』와 같은 세계적 수준의 독창적 천문과학을 탄생시킨 결정적 원동력이 되었다. 고도의 세련됨을 자랑하는 고대 및 중세의 천문도가 어느 날 갑자기 고립되어 출현할 수는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고인돌의 덮개돌에 새겨진 성혈과 정교한 방위각은 바로 우리 민족의 천문학적 사유가 선사시대부터 자생적으로 뿌리 내렸음을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하늘의 흔적이다.
고인돌이 갖는 역사적·학술적 본질은 그것이 고조선(古朝鮮)의 문화적 정체성과 영토의 궤적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물질적 지표인 동시에, 고대인의 고차원적 정신세계를 담아낸 선사 천문학의 보고(寶庫)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고인돌은 그저 비바람에 마모된 무기물적 바위나 흔한 거석 구조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고인돌에 진정한 학술적 생명력을 부여하는 길은 명확하다. 고고학과 천문학, 지리학의 경계를 허물고, 대지와 하늘을 입체적으로 결합하는 융복합적 연구 패러다임으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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