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의미의 아이러니

[책마주보기]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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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는 일은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과 그 사건의 의미를 경험하는 사이의 간극을 사유하는 일이다. 시험 날짜를 착각한 한 청년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도 무엇을 얻게 될지도 모른 채 서 있다. 정지된 신체, 혹은 지연은 이 책 전체를 떠받치는 존재론적 거소다. 청년의 사건은 지연의 다른 인생을 살라는 하나의 계시로써 훗날 히말라야의 길 위에서 시차를 두고 회자된다. 따라서 청년이 시험장에 늦은 사건 자체는 중립적이다. 그것을 재앙으로 읽을지 계시로 읽을지는 사건 이후 살아낸 시간이 결정하는 문제다. 류시화의 문장들이 반복적으로 던지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물음은 그러므로 회의주의적 물음이 아니라 의미가 사건과 동시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자각에 가깝다.

여기서 화 속에 복이 기대어 있다는 노자의 화혜복지소의(禍兮福之所倚)를 호명한다. 이는 화와 복이 애초에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어서 성립하는 관계적 사건이라는 인식으로서 류시화가 들려주는 마흔 편의 일화들이 "막힌 길"에서 출발하는 것과 상통한다. 막힘이 없다면 열림도 없고 재앙의 형상 없이는 계시의 형상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상호 의존 구조를 저자는 설교하지 않고 다만 보여준다. 예컨대 힌디어로 "나는 오늘 행복하다"를 억지로 발음하던 입은 구체적 신체의 기록으로 관념을 대신한다.

몸의 기록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의 힌디어 수업」에서 화자는 의미가 도착하지 않은 낯선 음절을 반복적으로 발화하다 보면 발화 자체가 의미를 앞질러 몸 안에 어떤 지형을 새긴다면서 신체의 기록성을 언급한다. 「매장과 파종」에서 저자가 씨앗을 묻는 행위와 시신을 묻는 행위 사이의 형태적 동일성을 발견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땅에 묻히는 동작은 하나이되 그것이 매장인지 파종인지는 오직 사건 이후에 무엇이 그 자리에서 다시 솟아나는가에 의해서 의미는 지연된다. 류시화의 사색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의미를 사건에 앞서 선언하지 않고 사건이 스스로 형상을 갖출 때까지 기다리는 지점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사건과 의미 사이의 간극을 견디는 데 있지만 그 간극이 매 에피소드마다 "계시"라는 동일한 해석의 형식으로 봉합된다는 데에서 잠언집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류시화의 서사들은 예외 없이 화해에 도달함으로써 화복상의(禍福相倚)의 철학적 개방성을 자기계발의 닫힌회로에 가든다. 애써 견뎌 보였던 '지연'을 다시 서둘러 봉합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사건과 의미 지연 사이에서 기투적 존재의 힘을 추찰하게 하면서 닫힘은 닫힘이 아니라는 사유를 이면하고 있다.



서운정 작가는



군산 출신으로, 제18회 ‘바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솔바람소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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