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산업 생태계의 대전환

기업이 아니라 ‘생태계’가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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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20세기 산업을 상징하는 단어가 ‘공장’이었다면, 21세기를 설명하는 단어는 ‘생태계’다. 한때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했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더 많이, 더 빨리 만들면 됐다.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량을 늘렸다. 포드의 컨베이어벨트가 그 시대를 상징했다. 표준화·대량생산·원가절감이 산업의 문법이었다. 그 문법이 바뀌고 있다.

AI·반도체·플랫폼·데이터·로봇·에너지가 서로 결합하면서 경쟁의 단위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이 기업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생태계가 생태계와 경쟁한다.

산업의 역사는 어쩌면 ‘최적화 범위의 확대’였다. 처음에는 공장 안의 생산성을 높였다. 이후 물류·재고·협력업체를 연결해 공급망 전체를 최적화했다. 이제 그 경계가 대학·연구소·금융·정부·에너지·데이터·소비자까지 넓어지고 있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첨단 반도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설계, 파운드리, 메모리, 노광장비, 소재·부품, 패키징, 소프트웨어가 연결된다. 아무리 강한 기업이라도 이 모든 기술을 혼자 장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21세기 경쟁력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연결할 수 있는가’에서 결정된다. 경제의 공식도 달라진다.

산업사회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왕이었다. 많이 생산할수록 평균비용이 낮아졌고, 거대한 공장과 자본이 진입장벽이었다.

플랫폼과 AI 경제에서는 ‘연결의 경제’가 작동한다. 사용자가 모이면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쌓이면 서비스가 좋아진다. 서비스가 좋아지면 다시 사용자가 몰리고, 그 주변으로 개발자·기업·투자자·콘텐츠 생산자가 결합한다. 과거의 강자는 공장을 소유했다. 오늘의 강자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미래의 강자는 인간과 기업, 데이터와 AI가 자신의 생태계에서 활동하도록 만드는 ‘산업의 운영체제’를 장악하려 할 것이다.

산업의 권력이 소유에서 연결로 이동하는 것이다. 더 큰 변화는 인간에게 찾아온다.

우리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이동 서비스를 이용한다. 음반을 사지 않고 음악에 접속하고, 영화를 소장하지 않고 스트리밍한다. AI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이 이제 ‘지능’을 빌려 쓰기 시작했다. 검색·번역·분석·디자인·코딩·보고서 작성까지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에 참여한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근육을 기계화한 사건이었다면, AI 혁명은 인간의 인지활동 일부를 기계화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AI가 어떤 직업을 없앨 것인가”만 묻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하고, 기계에는 무엇을 맡길 것인가.” 노동의 역할도 바뀐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기계를 조작했다. 정보사회에서는 컴퓨터를 사용했다. AI 사회에서는 여러 AI와 로봇을 지시하고 조율하고 검증하는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1인 기업의 의미도 달라진다. 혼자 일하는 회사가 아니라 한 사람이 수십 개의 AI와 디지털 도구를 지휘하는 초소형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단순한 사용법이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일을 나누고, 질문을 설계하고, AI의 오류를 판별하며 최종 책임을 지는 능력이다. 인간은 ‘작업자’에서 ‘AI 지휘자’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화의 공식도 바뀌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업들은 가장 싼 곳에서 생산해 가장 큰 시장에 판매했다. 그러나 팬데믹과 미·중 갈등, 전쟁, 반도체 공급난과 에너지 안보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질문이 등장했다. “가장 싼 공급망인가, 가장 버틸 수 있는 공급망인가.” 과거에는 재고와 중복 투자가 낭비였다. 그러나 공급망 하나가 끊어져 전체 공장이 멈춘다면 생산거점의 분산과 일정한 재고는 낭비가 아니라 보험이다. 효율성(Efficiency)만 계산하던 시대에서 회복탄력성(Resilience)까지 계산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AI 시대에 더욱 귀해지는 자본이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정보가 넘쳐날수록 무엇이 진짜인지, 누가 책임지는지, 누구의 판단을 믿을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역설적으로 기술이 풍부해질수록 신뢰는 희소해진다.

산업혁명은 공장을 가진 자에게 힘을 주었다. 석유시대는 자원을 가진 자에게, 정보혁명은 플랫폼과 데이터를 장악한 기업에 힘을 주었다. AI 시대의 힘은 기술자본·지능자본·데이터자본·관계자본·신뢰자본을 얼마나 강하게 연결하느냐에서 나올 것이다. 결국 산업의 대전환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20세기의 경쟁이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였다면, 21세기의 경쟁은 ‘얼마나 많은 것을 연결해 스스로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는가’다. 20세기의 승자는 가장 큰 공장을 건설했다. 21세기의 승자는 가장 큰 공장을 가진 기업이 아니라 가장 강한 생태계를 설계한 기업일 것이다. 공장의 시대는 생산을 지배했다. 플랫폼의 시대는 연결을 지배했다. AI의 시대는 ‘연결된 지능’을 지배하려 한다. /배문철 시인, 평론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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