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AI는 우리의 기억을 대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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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언젠가부터 나는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고, 캘린더에 일정을 적는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하고, 잊어버린 것이 있으면 다시 찾아본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인공지능에게 묻는다.

기억해야 할 것들을 어딘가에 맡겨두고 나는 점점 편안해진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미래인지도 모른다. 잊어버려도 괜찮은 세상. 필요한 순간이면 누군가가 대신 기억해주는 세상.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기억을 대신해주는 것이 정말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일일까.

인공지능은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기억한다. 사람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동안 데이터는 훨씬 정확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 기록학에서는 이처럼 기억을 문서나 사진, 영상과 같은 외부의 매체에 남겨두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상한 능력이 하나 있다.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오히려 더 오래 사랑하는 능력이다. 오래전 걸었던 골목의 이름은 잊었지만, 비가 내리던 날 그 길에서 맡았던 냄새만큼은 선명하다. 어떤 노래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첫 소절만 흘러나오면 그 시절의 풍경이 고스란히 떠오르기도 한다. 이것은 데이터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이다. 인지과학에서는 기억을 단순히 뇌 속에 정보를 저장해두는 일로만 보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특정한 장소와 냄새, 소리, 표정과 연결되어 다시 떠오른다. 그래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잊고 있던 수십 년 전의 감정을 갑자기 불러내기도 한다.

기록은 기억을 불러오는 문이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AI가 우리의 기억을 대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기억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에게 “내가 그때 어디에 있었지?”라고 물으면 정확한 장소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바람은 조금 차가웠고, 이상하게도 대화는 따뜻했다는 것까지 온전히 대신 기억해줄 수 있을까. 설령 그 모든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그날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 아닐까. 우리는 아마 앞으로 더 많은 기억을 AI에게 맡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할 줄 아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기록할 필요는 없다.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필요도 없다. 가끔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한참 동안 바라보아야 하는 풍경이 있다. 기록연구사로서 나는 기록이 오래 남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록되지 않은 것들의 가치도 믿는다. 왜냐하면 사람의 기억은 기록보다 훨씬 이상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 하나에 마음을 놓아버리고, 어떤 공간을 걷다가 갑자기 오래전의 나를 만나고, 백 번을 보아도 좋은 어느 영화의 한 장면에 마음이 젖어드는 것. 그 몽글몽글한 감정까지 모두 데이터로 저장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완벽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기억하는 순간, 어쩌면 기억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현재 남원에서는 지역아카이브 ‘남원다움 제2관’을 만들고 있다. 지역의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고, 보존하고, 시민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곳에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담을 것인가?”

이유 없이 어떤 계절이 그리워지는 마음은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오래된 노래 한 소절에 갑자기 어린 시절의 어느 저녁이 떠오르는 그 순간까지도 디지털 아카이브에 담아낼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기록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감정을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남겨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장의 사진이 누군가의 기억을 깨우고, 한 줄의 글이 오래전의 골목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 어쩌면 좋은 아카이브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AI에게 기억을 맡길 수 있는 시대는 분명 오고 있다. 앞으로의 아카이브는 더 많은 것을 저장하는 기술보다, 사람이 무언가를 다시 느끼게 하는 기술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100년 뒤 누군가 남원다움의 기록을 열어보았을 때, 2026년 남원의 거리와 사람과 풍경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낯선 화면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상하게 이곳이 그립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기록이 시간의 벽을 넘어선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은 데이터로 저장될 수 있지만, 그 기억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아카이브에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아니라, 다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억인지도 모른다.

/남원시 기록연구사 권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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