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오랫동안 서예와 문인화, 산수화를 그리던 전북의 화단에 새로운 유화가들이 조선미전을 통해 등장했다. 이 변화의 기점에 전북 최초의 서양화가 이순재(李淳宰, 1904~1958)가 있다.
이순재는 전주 출신으로 신흥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전문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1928년 제7회 조선미전 양화부에 <이른 봄>을 출품해 입선하고 귀국 후에는 전주를 중심으로 삽화와 그림을 그리며 화가로 활동했다. 이는 전북 출신 작가가 조선미전 양화부에서 거둔 최초의 입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제8회와 제10회에도 입선하면서 전북 서양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전북 최초의 서양화가’를 이야기할 때 세 사람을 더 기억해야 한다. 바로 이순재보다 먼저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수학한 박노홍과 1926년 군산 지역에서 조선미전 최초 입선한 김용해, 손용주로서, 이들은 앞서 필자가 이 코너를 통해 소개했다.
따라서 ‘누가 먼저 서양화를 시도했는가’라는 기준만 놓고 본다면 이들의 위치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으나, ‘전북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명칭을 실제 지역 화단에서의 작품 발표와 화가로서의 활동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순재는 1928년 <이른 봄>을 시작으로 조선미전 총 3회 입선하였고, 전북에서 서양화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화가로 활동하며 김영창을 비롯한 후대의 전북 서양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이순재는 앞서 다른 세 인물과 달리 전북에서 실제 서양화가로 활동하면서 지역 화단의 출발을 보여준 인물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여기에 그의 첫 입선작 <이른 봄>은 단순히 전북인 ‘서양화가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의미가 크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전통미술과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통 산수화에서 자연은 단순한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화가의 정신과 정서를 담아내는 대상이었다. 실제 경치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자연 속에서 이상적인 질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화면에 옮기는 것이 산수화의 중요한 미학이었다.
이순재의 <이른 봄>은 한국의 서양화가 전통 산수의 자연관을 완전히 단절하고 서양 풍경화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전통적 주제와 시선 위에 새로운 회화 언어가 겹친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는 같은 해 전북에서 입선한 작품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이른 봄>은 전북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사에서 단순한 ‘초창기 서양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전통 산수화에서 근대적 풍경화로 넘어가는 시각적 전환이었다. 이순재의 <이른 봄>은 전통의 산수관이 근대의 풍경화로 어떻게 이동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며, 한국의 회화적 전통이 새로운 서양미술과 어떻게 만났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 하겠다./전북대학교 예술대학 강의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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