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병원에 책임만 떠넘긴 국가의 양적 줄세우기

[기획 연재: 의료와 법의 경계에서] ② ‘의료 질 평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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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1970년대 청년 의사 시절 마주했던 비극이 환자 개인의 ‘지불 능력’에 따라 진료와 생명이 갈리던 현실이었다면, 반세기가 흐른 오늘날 목격하는 왜곡은 ‘병원의 덩치와 자본력’이 국가 제도의 혜택을 독식하는 구조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국가가 져야 할 본질적 보건의료 책무를 외면한 채 현장에 부담과 책임을 고스란히 떠넘기는 관료주의적 관행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제도적 착시가 바로 정부가 매년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시행하고 있는 ‘의료질평가 지원금’ 제도다.



본래 의료 질 평가는 환자 안전을 강화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높이며, 필수의료를 묵묵히 지탱하는 의료기관을 격려·보상한다는 숭고한 취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진료 현장에서 체감하는 이 제도의 실상은 ‘질(Quality)’의 평가가 아닌 철저한 ‘양(Volume)’의 줄세우기에 불과하다. 고가의 첨단 의료장비 보유 대수, 막대한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 대규모 전담 인력 수, 그리고 얼마나 많은 환자를 빠르게 입원시키고 회전시키느냐는 진료량이 평가 등급을 결정짓는 절대적 잣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적 잣대는 필연적으로 환자와 자본이 집중되는 수도권의 초대형 병원(High-volume center)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형성한다.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압도적인 진료량과 자본력을 앞세워 손쉽게 최상위 등급을 독점하고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정부 지원금을 휩쓸어 간다. 반면, 급격한 지역 인구 감소와 환자의 수도권 유출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지방 거점병원들은 진료의 본질적 가치나 의료진의 헌신과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하위 등급으로 밀려나 재정적 불이익을 강요당한다. 지역 의료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국가 정책이 도리어 수도권과 지방 간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는 기폭제로 작동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왜곡된 모순의 한가운데에 전북대병원과 같은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들이 위태롭게 서 있다. 정부는 이들에게 권역 내 중증·응급·희귀질환 환자의 최종 치료와 필수의료의 최후 보루 역할을 다하라며 ‘지역 완결형 의료’라는 거창한 책임을 떠맡긴다. 그러나 그 막중한 책임에 걸맞은 실질적인 재정 지원이나 지역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한 정책적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수도권 초대형 병원과 똑같은 획일적 양적 지표로 평가받아 지원금에서 소외당하면서도, 만성적인 인력난과 누적되는 재정 적자를 오롯이 개별 병원과 의료진의 헌신으로 버텨내라는 것은 국가의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폭력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군 단위 농어촌 지역에서 필수의료의 실핏줄 역할을 담당하는 100병상 안팎의 소규모 지역의료원과 공공병원들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인구 소멸 지역에서 고령층과 의료 취약계층의 곁을 지키며 방문진료와 만성질환 관리를 도맡는 이들 병원은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평가 기준의 문턱조차 넘지 못해 정부 지원 제도의 사각지대에 완전히 방치되어 있다. 기초 공공병원의 손발을 묶어둔 채 거점 국립대병원 홀로 권역의 모든 의료 짐을 짊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1990년대 연명치료의 가이드라인조차 세우지 않은 채 의사 개인을 형벌로 옭아맸던 과거의 무책임과, 지역 필수의료를 지탱할 안전망은 다지지 않은 채 획일적 양적 평가로 지방 병원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오늘의 현실은 정확히 같은 뿌리에서 나온 관료적 나태함이다. 진정한 ‘의료 질 평가’라면 규모의 경제를 재는 기계적 잣대를 거두고, 지역 거점병원과 소규모 공공의료원이 해당 지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묵묵히 버텨내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국가는 손쉬운 줄세우기 평가를 멈추고, 지역의료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입과 지역 가산 수가 등 실질적인 제도적 결단에 즉각 나서야 한다.

/조백환(진안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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