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경회 선정비’ 등 무장현감 선정비‘사라져

우리 곁의 숨은 보물들로 시선 돌려야 지역 문화유산의 가치 더욱 일깨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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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역사는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발을 딛고 서 있는 향토(鄕土)의 흙 속에, 무심히 지나치는 길가의 돌비석 속에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전북 고창군 무장면에 남겨진 삼장사(三壯士) 중 한 명인 최경회 장군의 선정비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정신적·물질적 자산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향토 문화유산들이 처한 현실은 아쉬움을 넘어 위태롭기까지 하다.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활약하며 끝까지 성을 지키다 장렬히 순절한 최경회 장군.그가 과거 무장현감으로 재임하던 시절, 선정을 베푼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선정비는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다. 고통받던 백성들을 보듬었던 목민관의 애민 정신과, 훗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구국 정신이 맞닿아 있는 상징물이다. 여기에 이름마저 애틋하고 신비로운 사라려에 얽힌 이야기 역시 무장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적 풍요로움을 증명하는 귀중한 스토리텔링의 원천이다.

최경회를 비롯, 김욱, 유인량, 이태연, 김왕, 신후명, 심남, 안세징, 최원, 한배하, 권이진, 김유희, 조연창, 조기영, 윤영신, 홍순향, 홍종관, 이희익, 이중익, 조명호, 신좌익 등 무장현감을 지낸 21명의 공적비가 사라졌다는 고창군 '무장현 관아와 읍성 종합정비계획'이란 보고서가 보인다. 문제는 이처럼 높은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들이 대중의 무관심과 당국의 관리 소홀 속에 점차 잊히고 있다는 점이다. 안내판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거나, 마모되어 가는 비석을 보존할 보호각조차 없이 비바람에 노출되어 있다면 이는 선조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문화유산은 한번 훼손되거나 기억에서 사라지면 다시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

당장의 경제적 논리나 거대한 국보급 문화재에만 이목이 집중되는 사이, 지역의 뿌리를 지탱하는 향토 문화재들은 소리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지자체와 문화재 관계 당국은 무장면 최경회 선정비를 비롯한 관내 향토 문화유산의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체계적인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석의 보존 처리는 물론,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그에 담긴 역사적 사실과 설화를 쉽게 알 수 있는 안내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급선무다. 더 나아가 이를 단순한 ‘과거의 유물’로 가두어 두지 말고, 현대적인 문화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경회 장군의 호국 정신과 사라려의 이야기를 연계한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역 관광 자원과 결합하여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펼친다면 낙후된 지역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역사를 잊은 공동체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무장면의 최경회 등 선정비가 더 이상 잡초 속에 방치되거나 주민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두어서는 안된다. 향토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은 곧 우리 지역의 자존심을 지키고,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정체성을 물려주는 일이다. 이제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지역 주민 모두가 우리 곁의 숨은 보물들을 향해 따뜻한 관심의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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