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호르무즈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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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해협은 육지와 육지 사이의 좁고 긴 바다이다. 이 해협을 따라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이뤄져 ‘바다의 길목’이라고도 부른다.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 있는 동아시아 물류의 대동맥 말라카 해협, 유럽과 아프리카의 경계에 놓인 지브롤터 해협이 대표적이다. 한반도 남부와 일본 큐슈 사이의 대한해협도 중요한 바닷길이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경제와 에너지 안보를 좌우하는 지구상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 해협을 통과해야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이란 등 중동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가 각 대륙으로 나갈 수 있기에 세계 에너지의 목구멍이라고도 한다.

수송량이 절대적이다. 세계 해상 원유 유통의 약 30%와 LNG의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등 일부 국가가 우회 송유관을 갖고 있으나, 막대한 물량을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만큼 호르무즈 해협은 에너지 수송에 있어 대체가 불가한 항로이다.

고대부터 패권국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차지하려 했다. 기원전 500년경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황제는 이 해협을 통해 해상 무역을 장악했다. 그후 100년이 지나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제국 역시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통로로 중시했다. ‘안전한 정박지’(Hormos)라는 뜻의 호르무즈라는 명칭이 그때 등장했다.

중세 이후 약 500년간은 호르무즈 왕국이 이 해협을 통제했다. 아랍계 세력이 세운 작은 나라였으나, 몽골 제국 치하에서도 실질적인 자치권을 누렸다. 호르무즈 섬에 수도를 두고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을 오가는 모든 상선에 세금을 부과해 막대한 부를 누렸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황금기를 누린 왕국이었다.

유럽의 대항해 시대가 열리자 1515년부터 포르투칼 제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해 통행세와 무역세로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당시 아랍 전역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도전을 받았지만, 포르투칼은 굳건하게 버텼다. 그러다가 1622년 페르시아와 영국 연합군에 의해 쫓겨났고, 이후 영국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아랍권 국가들이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호르무즈 해협은 조용하지 않았다. 미국(서방)과 이란 사이에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해협 봉쇄’ 카드가 등장했고, 그때마다 세계 경제는 휘청거렸다. 올 2월 미국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대규모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전쟁 여파로 다시 해협이 몸살을 앓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을 요청하는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정부가 파병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자기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켜 놓고 같이 싸우자는 트럼프의 심사가 괘씸하지만, 거대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정부의 속내도 복잡할 것이다. 요구에 응하더라도 호르무즈의 긴장을 완화하는 기뢰 제거 등 평화적 기여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말 그대로 안전한 정박지, 호르무즈가 세계 경제의 통로로 재작동되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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